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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

종이와 키보드

regular Caribbean Iguana 37

종이와 키보드 위엔 이미 온갖 메모와 빨간 줄, 끄적거림이 가득했다. 새벽 1시 반, 창밖엔 버려진 광고지가 바람에 날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낡은 신문사 사무실, 벽지는 누렇게 뭐가 묻어 있었고, 여느 밤처럼 형광등은 반쯤 깜빡이고 있었다. 서울 도심이라고 해도 이런 구석은 따로 있었다.

나는 연쇄 살인 사건 관련 초고를 세 번째 고쳐 쓰면서, 사건 기록 접근이 막힌 부분에서 손이 멈췄다. 경찰 내부 기록은 이미 모조리 막혀 있었고, 철우 그 새끼와 한 번 부딪히고 나서 더는 손도 못 대게 됐다. 일선 형사 새끼들은 자기 밥그릇 지키느라 눈치만 보고, 언론은 입맛에 맞는 정보만 흘려주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야, 성우야. 오늘도 밤샘이냐?”

선배의 목소리. 홍승준, 이 업계에서 신문지는 다 써도 남는다는 그 선배.

나는 모니터에만 시선을 둔 채, “기록 접근 좀 풀어달라고 했잖아요. 좀 안 되나요?”

승준은 내 책상 어귀에 기대 이유 모를 피로감을 숨기지 않았다.

“지금 경찰 쪽에서 우리 신문사 협조 끊으려는 거 알아? 그거 너 때문인 거, 모르는 척하냐?”

나는 대답을 안 했다. 손끝으로 원고지 한 장을 접었다 펴며 쳐다봤다.

“강박 좀 그만 가져. 신문사 내부 분위기도 생각해야지. 우리… 이번엔 그냥 주는 대로 써.”

“주는 대로 쓰면, 다 뼈빠진 협박이나 뒷거래로 덮여 있잖아요.”

말 끝에서 목이 잠겼다.

승준은 짧게 웃었다. “너, 이번 사건 너무 깊이 빠지지 마. 연쇄 범죄라고 다 사회적 음모는 아니야.”

“아니, 선배. 이거 진짜 이상해. 같은 유형, 같은 피해자, 같은 시간대. 그리고 경찰은 기록 자체를 감춘다고.”

순간, 내 목소리도 절박하게 쏟아졌다.

승준은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이 주는 정보가 썩은 냄새가 난다는 걸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알았다. 피해자 기록을 제대로 확인 못하게 막는 저쪽도, 내부에서 눈치만 보는 이들도, 결국 다 부패의 일부였다.

승준은 못들은 척, “내일 편집장한테 또 불려가면 네 기사 손봐야 할 거다. 너무 직접적으로 경찰 언급하지 말고, 사회 분위기 얘기로 돌려.”

이쯤 되면 나는 웃음도 안 나왔다.

“알았어요. 돌려서 쓸게요.”

마치 협상이 끝난 것처럼 대꾸했다.

승준은 “좀 쉬어. 네 얼굴, 일주일은 못 씻은 것 같다. 나간다.”

툭툭 책상을 두드리고 문 쪽으로 향했다.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손톱을 쿡 찔렀다. 선배가 나가고 나서 사무실엔 서늘하게 침묵이 내려앉았다.

밖은 더 어두워졌다. 창밖엔 골목 불빛이 완전히 꺼졌고, 누군가 그림자처럼 신문사 맞은편에서 오래도록 나를 보고 있었다.

눈길이 마주쳤다 싶었으나, 이미 그 그림자는 골목 모퉁이로 사라졌다.

나도 모르게 허리를 곧게 펴고, 손가락을 흔들었다. 내 조사 과정이 누군가에게 보이고 있다는 암묘한 불안감,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나는 다시 기사 초고를 띄웠다. 진실은, 어딘가엔 뻔하게 드러나 있었지만, 그걸 기록에 옮기는 일이 더러운 수많은 중계와 거짓말 속에서 복잡해진다.

한 문장, 한 문장 더 집착적으로 고쳐 쓰다가, 결국 키보드 옆에 있던 폰을 집어 들었다.

김지연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지연아, 이번 사건 진짜 협력해주라. 더 이상은 내부 정보 막히는 거 못 참겠어. 네 분석도 필요해. 내일 연락줘.”

메시지를 보내고 화면을 내려놓았다. 손끝은 쿨하게 흔들렸지만 마음은 이미 어느 구석에서 녹이 슬고 있었다.

나는 다시 초고 위를 응시했다.

형광등이 살짝 깜빡였고, 바람 소리에 어딘가 먼지가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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