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ot Synopsis
제국의 유일한 몽화사(夢畫師), 서이안은 죽은 자의 마지막 꿈을 그림으로 남겨 저승길을 배웅하는 일을 숙명처럼 여기며 살아간다. 타인의 꿈에 들어가는 대가는 혹독했다. 꿈을 그릴 때마다 자신의 기억 한 조각이 안개처럼 흩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는 망자의 평온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지워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황제의 서늘한 칙명이 떨어진다. 역모죄로 사사된 황태자, 이현의 마지막 꿈을 그려 봉인하라는 것. 황실의 깊은 어둠이 서린 의뢰에 불길함을 느끼면서도 이안은 거부할 수 없었다. 그는 평소처럼 붓을 들고 향을 피워, 차갑게 식어버린 황태자의 마지막 꿈속으로 발을 들인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것은 피비린내 나는 역모의 현장이나 회한이 아니었다.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오래된 서가, 다정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던 여인, 그리고 칼이 아닌 붓을 잡고 싶어 했던 어린 소년. 그 소년의 얼굴은 놀랍게도 잊고 있던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과 겹쳐 보였다.
꿈에서 깨어난 이안은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황태자의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개인적이고 따스했으며, 결정적으로 그 꿈의 파편들이 자신의 텅 빈 기억 속 어딘가를 아프게 건드렸다. 그는 황제의 명에 따라 꿈의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 황실 서고 ‘비각(祕閣)’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기록의 수호자이자 살아있는 역사서로 불리는 사서, 천라희와 마주한다. 라희는 꿈처럼 불확실한 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행위 자체를 경멸하며, 이안이 가져온 몽화의 내용을 ‘사실’에 입각하여 철저히 통제하고 왜곡하려 든다. 그녀는 황태자의 꿈을 ‘역모를 뉘우치는 참회의 기록’으로 정리하려 하고, 이안은 자신이 본 진실이 지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처음으로 황명의 ‘기록’에 저항한다. 이 과정에서 이안은 황태자의 꿈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된 ‘기억의 감옥’이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그는 잊힌 진실을 찾기 위해, 비각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황태자와 관련된 기록들을 몰래 파헤치기 시작한다.
이안의 수상한 행적은 곧 수도의 정보상인 야나기 렌의 귀에 들어간다. 렌은 처음에는 돈 냄새를 맡고 이안에게 접근하지만,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진실을 파헤치려는 그의 위태로운 모습에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본다. 렌은 특유의 정보망과 생존 감각으로 이안을 돕기 시작한다. 그는 이안이 꿈속에서 본 오래된 서가가 지금은 폐쇄된 황실의 별궁 ‘월영궁(月影宮)’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곳이 과거 어린 황족들의 교육을 담당하던 비밀스러운 장소였음을 밝혀낸다. 렌의 도움으로 월영궁에 잠입한 이안은 그곳에서 자신의 이름 ‘서이안’과 황태자 ‘이현’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진 낡은 책상과 빛바랜 그림들을 발견한다. 그 순간, 이안은 잊고 있던 충격적인 과거의 편린들을 떠올린다. 자신은 본래 황태자의 벗이자 그림 스승이었으며, 두 사람은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것이다.
모든 조각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과거, 현 황제는 자신의 친아들이 아닌 총명한 조카, 이현을 질투하고 두려워했다. 그는 이현을 제거하기 위해 역모를 조작했고, 이현과 가장 가까웠던 이안에게 끔찍한 선택을 강요했다. 이현의 기억을 지우고 ‘역모를 꾸민 죄인’이라는 거짓 기억을 심는 ‘몽화술’을 시전하라는 것. 이안이 거부하자, 황제는 그의 눈앞에서 이안의 가족을 참살했고, 절망에 빠진 이안은 결국 친구의 기억을 제 손으로 파괴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상상 이상으로 참혹했다. 친구의 기억을 지우는 과정에서 술법이 역류하여, 이안 자신도 그와 관련된 모든 기억을 잃고 몽화사가 된 것이었다. 황태자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꾼 꿈은, 사실 이안이 필사적으로 봉인해두었던 두 사람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이 그의 죽음과 함께 터져 나온 것이었다. 이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이안은 더 이상 망자의 길을 배웅하는 방관자가 아닌, 친구의 복수와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한 심판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한편, 천라희는 이안의 행적을 추적하며 그가 월영궁에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이안을 체포하기 위해 비각의 기록들을 뒤지다가, 공식 역사에서는 삭제된 월영궁 관련 기록과 황태자 이현의 유품 속에서 의심스러운 흔적들을 발견한다. 그녀가 믿어왔던 ‘완벽한 기록’ 곳곳에 미세한 균열과 인위적인 삭제의 흔적이 보이자, 그녀의 신념은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라희는 결국 자신이 믿는 기록의 진실성을 확인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황제의 과거 행적을 파헤치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황제가 역모를 조작했다는 심증을 굳히게 된다. 기록의 순수성을 더럽힌 황제에게 분노한 그녀는, 역설적으로 자신이 가장 경멸했던 ‘불확실한 존재’ 이안과 손을 잡는 위험한 선택을 한다. 그녀는 이안에게 황궁의 비밀 통로와 경비 교대 시간 등, 비각의 기록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내부 정보를 제공하며 그의 복수를 돕는다.
렌이 황궁 외부의 여론을 조작하고 혼란을 야기하는 사이, 이안은 라희가 알려준 비밀 통로를 통해 황제의 침소 깊숙이 잠입한다. 그는 황제가 잠든 사이, 그의 꿈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이번에는 망자의 꿈을 그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안은 자신의 모든 기억과 존재 자체를 대가로, 마지막 몽화술을 시전한다. 그는 황제의 꿈속에 ‘황태자 이현을 죽이고 벗의 기억을 빼앗은 죄인’이라는 지울 수 없는 진실을 그림으로 새겨 넣는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황제는 끔찍한 죄책감과 환영에 시달리며 미쳐버리고, 스스로 모든 죄를 대중 앞에서 자백하기에 이른다. 모든 것을 끝낸 이안은 마지막 힘을 소진한 채 쓰러지고, 렌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둔다. 그의 마지막 순간, 그의 텅 비어버린 눈에는 그리운 친구 이현과 함께 그림을 그리던 따스한 월영궁의 햇살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몇 년 후, 제국에는 새로운 황제가 즉위하고, 비각의 사서 천라희는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몽화사 서이안과 황태자 이현의 진짜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비각 가장 깊은 곳에 봉인한다. 그것은 그녀가 ‘기록된 사실’을 넘어 ‘기억되어야 할 진실’에 바치는 최초이자 마지막 헌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