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결전의 날, 각자의 무대
[장면 37]
전국체전 사격장 – 이른 아침, 차가운 공기와 번쩍이는 형광등 아래
(사격장 복도. 정유림, 어깨를 곧게 펴고 조용히 걸어 들어온다. 손에는 낡은 팔찌와 접힌 쪽지 한 장. 주변은 북적거리지만 유림의 시야는 오직 앞만 본다. 호흡이 얕게 흔들린다.)
정유림
(혼잣말, 속삭이듯)
오늘은, 괜찮아. 할 수 있어. 세라가 있으니까.
(유림, 팔찌를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쓸며 쪽지를 펼쳐본다. 종이 위, 휘갈겨 쓴 세라의 글씨: ‘너라서 괜찮다’. 유림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간다.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쉰다.)
(경기장 안. 사격선에 선 유림. 총을 쥔 손이 살짝 떨린다. 관중석, 오승연이 몰래 손바닥을 쥐고 있다. 심장의 박동 소리가 귀에 울린다.)
심판
정유림 선수, 준비.
(유림, 총구를 들어 올리며 세라의 얼굴을 떠올린다. 전날 밤, 짧은 포옹. 온기가 남아 있는 듯 왼손을 꽉 쥔다.)
정유림
(속으로)
세라야… 보고 있지?
(짧게 한 번 숨을 들이마시고, 총에 시선을 고정한다.)
(첫 발. 약간 빗나간 점수. 유림, 속으로 조용히 욕을 삼킨다. 눈동자가 흔들리지만, 팔찌를 다시 쥐며 침착하게 숨을 가다듬는다.)
cut to
[장면 38]
체육고 태권도 경기장 대기실 – 오전, 햇살이 커튼 사이로 비친다
(이세라, 도복 소매를 걷으며 스트레칭 중. 도복 안쪽, 손끝으로 팔찌를 만지작거린다. 얼굴은 굳어 있지만, 눈동자만은 흔들린다.)
이세라
(혼잣말, 낮고 거칠게)
유림이, 잘하고 있겠지…
(팔찌를 더 세게 움켜쥔다.)
후배1
선배, 많이 떨려요?
이세라
(고개 돌려, 일부러 웃으며)
내가 떨면 니들은 어쩌라고.
(짧게 웃고, 다시 고개를 숙인다. 머릿속엔 유림의 메시지 ‘너라서 괜찮아’가 맴돈다.)
(경기장 소리가 점점 커진다. 세라, 주먹을 꽉 쥐고 일어선다.)
cut to
[장면 39]
태권도장 – 경기 직전, 실내가 숨 막힐 듯 조용하다
(세라, 상대 선수와 맞서 선다. 상대의 눈빛이 매섭다. 첫 공격, 세라가 밀린다. 관중석에서 오승연이 지켜본다. 세라, 숨을 크게 내쉰다.)
이세라
(속으로, 목이 타는 듯)
괜찮다. 나니까, 할 수 있다.
(눈을 감았다 뜨며, 다시 자세를 잡는다. 유림의 얼굴이 스쳐간다.)
(두 번째 공격. 세라, 뒷꿈치를 강하게 구르고, 상대의 빈틈을 파고든다. 주먹이 허공을 가른다. 상대와 눈이 마주친다. 순간, 세라의 눈빛이 바뀐다. 결연함과 두려움이 동시에 스친다.)
cut to
[장면 40]
사격장 – 경기 후, 혼잡한 복도
(유림, 총을 내려놓고 천천히 걸어나온다. 팔찌를 만지작거리며, 휴대폰을 잠깐 켰다가 곧 화면을 꺼버린다. 결과를 확인하지 못한 채, 복도 끝 창가에 멈춰 선다. 햇살이 얼굴에 얹힌다.)
정유림
(혼잣말, 속삭이듯)
세라야… 넌 잘했을 거야. 분명히.
(유림,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눈을 감는다. 손끝에 팔찌의 거친 감촉이 전해진다.)
cut to
[장면 41]
태권도장 – 경기 종료 후, 한산한 출입구
(세라, 땀에 젖은 얼굴로 가만히 벽에 기대 선다. 관중석에서는 박수 소리가 멀리 울린다. 세라는 자신의 점수판을 멍하니 바라보다, 팔찌를 한 번 더 꼭 쥔다.)
이세라
(속으로, 숨을 내쉬며)
유림아… 니가 봤으면 좋겠다, 지금 내 얼굴.
(세라, 눈을 감았다 뜨며 출입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뒤돌아보지 않는다.)
cut to
[장면 42]
관중석 복도 – 오승연, 두 경기장 사이 복도를 뛰어오르며
오승연
(헉헉대며, 휴대폰을 연신 확인한다. 두 사람의 결과를 번갈아 본다. 미묘하게 굳은 표정.)
오승연
(혼잣말)
아, 진짜… 둘 다, 왜 이렇게 바보같이 애쓴대.
(승연, 잠시 멈춰서 두 경기장 사이에서 숨을 고른다. 손끝에 맺힌 땀이 반짝인다. 복도 너머, 두 무대의 소음이 동시에 들린다. 승연의 표정엔 질투와 동경, 걱정이 겹쳐 흐른다.)
fade out
(두 무대, 각자의 고요 속에서 유림과 세라가 서로를 떠올린다. 화면은 잠시 정지된 듯, 팔찌와 쪽지, 두 사람의 눈동자 위로 천천히 어두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