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mama79
하교길에 오르며 발걸음이 무거웠다. 평소라면 이 시간쯤 렌과 함께 걸었을 텐데, 오늘은 혼자였다. 도서관에서의 일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엘리의 스케치북에 그려진 뒷모습, 렌의 흔들리는 눈빛, 그리고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긴장감.
하늘은 이제 완전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고, 그 불빛 아래로 내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주머니 속 스케치북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오늘 그린 그림들이 마치 비밀스러운 고백처럼 그 안에 담겨있었다.
"지우야!"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엘리였다. 그녀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금발이 저녁 바람에 흩날렸다.
"아까는... 미안해." 그녀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도서관에서 갑자기 가버려서."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교실에서 보았던 억지스러운 웃음은 없었다. 대신 조금 전까지 친구들과 있었을 때와는 다른, 더 진실된 표정이 그녀의 얼굴에 있었다.
"괜찮아." 내가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떨렸다.
잠시 우리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멀리서 귀가하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엘리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접힌 종이 한 장이었다.
"이거..." 그녀가 망설이며 말했다. "네가 그린 그림이 자꾸 생각나서."
종이를 펼쳐보니 스케치였다. 도서관 창가에 앉아있는 누군가의 모습이었다. 내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으로 그려진 나는 낯설면서도 묘하게 친숙했다.
"난 항상 혼자였어." 엘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네 그림을 보면서 처음으로..."
그때였다. "지우."
렌의 목소리였다. 그가 학교 정문 앞에 서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그의 얼굴을 희미하게 비추었다.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엘리의 손이 살짝 떨렸다. 그녀는 재빨리 스케치를 내 손에 쥐어주고는 "내일 봐."라는 말만 남긴 채 걸음을 재촉했다.
저녁 바람이 차가워졌다. 손 안의 스케치가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렌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어둠 속에서 유난히 크게 들렸다.렌은 내 앞에 멈춰 섰다. 그의 시선이 내 손에 들린 스케치에 머물렀다가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 우리는 잠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가로등 불빛이 그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기다리고 있었어." 렌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낮고 무거웠다.
나는 스케치를 주머니에 넣으려다 멈췄다. 그 순간 종이가 바람에 살짝 펄럭였고, 렌의 시선이 다시 한번 그쪽으로 향했다.
"보여줄 거야?" 그가 물었다.
그의 말투는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마치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 입에서 나올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망설였다. 평소의 우리라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었을 텐데, 지금은 달랐다. 스케치를 보여주는 것이 마치 비밀을 털어놓는 것처럼 느껴졌다.
"렌..." 내가 입을 열었을 때, 멀리서 자전거 벨 소리가 들려왔다. 귀가하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그 소리들이 우리 사이의 긴장감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렌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가로등 불빛이 그의 눈동자에 비쳤다. 그 안에서 나는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감정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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