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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

1화

mama79

도서관의 오후는 언제나처럼 고요했다. 창가에 앉아 스케치북을 펼쳐놓은 채, 나는 연필 끝으로 빛과 그림자가 만드는 경계를 더듬었다. 책장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먼지 입자들을 반짝이게 만들었고, 그 모습이 마치 공중에 떠다니는 작은 별들 같았다.

시계 초침 소리만이 울리는 이 공간이 좋았다. 여기서는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나 역시 누구에게도 말을 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책장 너머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연필 소리가 내 주의를 끌었다.

잠시 망설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라면 그냥 무시했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그 소리가 나를 이끌었다. 책장 사이를 걸어가다 멈춰 섰다. 그곳에는 엘리가 있었다.

그녀는 바닥에 앉아 무릎 위에 스케치북을 올려놓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금발이 앞으로 흘러내려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 모습이 왠지 외롭게 보였다. 그녀의 연필이 종이 위를 스치는 소리가 마치 누군가의 속삭임처럼 들렸다.

내가 서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엘리가 고개를 들었다.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 순간 도서관의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놀람이 천천히 다른 감정으로 바뀌어갔다.

"지우야..."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의 억양과는 다른, 조금 더 부드러운 톤이었다.

나는 그녀의 스케치북에 시선이 갔다. 흑연 자국으로 얼룩진 종이 위에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 속 인물은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서 왠지 모를 그리움이 느껴졌다.

"혼자 있고 싶었는데." 엘리가 말했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거부감보다는 망설임이 묻어났다.

"나도." 내가 대답했다. "여기가 제일 조용해서."

엘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옆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 작은 제스처에 나는 그녀 옆에 앉았다. 우리 사이에는 이상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평소 교실에서 느끼던 것과는 다른, 더 깊고 미묘한 감정이었다.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서관의 고요함이 우리 사이를 채우는 동안, 나는 그녀의 스케치북에 그려진 인물을 다시 한 번 흘깃 보았다. 창가에 서 있는 그 뒷모습이 어딘가 익숙했다.

"네가... 그린 거야?"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엘리는 잠시 스케치북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그렸어."

그때 그녀의 시선이 내 스케치북으로 향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책을 살짝 가리려다 멈췄다. 평소라면 즉시 닫아버렸을 텐데,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보여줘도 될까?" 엘리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호기심과 함께 어떤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내 그림은 늘 혼자만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엘리에게는 보여주고 싶었다. 마치 오랫동안 닫혀있던 문을 살짝 열어보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스케치북을 펼쳤다.

엘리의 숨소리가 미세하게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그녀는 내가 그린 도서관 창가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햇살과 먼지, 그리고 그 사이로 비치는 나뭇잎들의 그림자를.

"이거..." 그녀가 말을 멈췄다. 나는 그녀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한 기색을 발견했다.엘리의 손가락이 내 스케치북 위를 맴돌았다. 종이에 닿을 듯 말 듯, 그녀의 손끝은 그림 속 빛줄기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그 순간만큼은 도서관의 공기마저 멈춘 것 같았다.

"네가 보는 세상이 이런 거구나."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는 단순한 감상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나는 그녀의 옆모습을 슬쩍 바라보았다. 평소의 조심스러운 표정 대신, 지금의 엘리는 마치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내 가슴 한켠을 간지럽혔다.

"난..." 말을 꺼내다 멈췄다. 평소처럼 대충 얼버무리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냥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뿐이야."

엘리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보이는 대로라..." 그녀가 자신의 스케치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난 늘 보이지 않는 걸 그리려고만 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녀의 그림 속 뒷모습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림 속 인물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내가 알고 있는 나와는 달랐다. 마치 엘리의 시선을 통해 다르게 해석된 나 같았다.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책장을 살랑거리며 지나갔다. 그 순간 우리의 스케치북 페이지가 동시에 넘어갔다. 마치 누군가 의도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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