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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

3

rookie.rebel

실험실 내부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아침부터 청소 로봇이 세 번이나 들락거렸고, 바코드가 없는 서류 꾸러미가 작업대 위에 쌓여 있었다. 창문 바깥으론 재처럼 흩날리는 회색 빛깔의 먼지가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내 앞에는 감정관리국 공식 스탬프가 찍힌 두터운 서류 봉투와, ‘A등급—극비’ 라벨이 붙은 검은 플라스틱 박스가 놓여 있었다. 지시서 첫 줄에는 내가 곧 받을 데이터 샘플과 그 해석에 일말의 오류도 있으면 안 된다는 문구가 반복되었고, 무색무취의 긴장감이 혈관을 타고 퍼지는 기분이었다.

수잔이 작업실 쪽 문을 조심스레 닫았다.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맥, 아까 복도에서 관리국 직원 세 명이나 봤어. 전에는 한 명도 보기 힘들었잖아?”

수잔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녀의 손끝은 서류 바닥을 썩썩 긁고 있었다.

유니는 스크린에 집중하는 척하면서도, 눈동자가 계속 내 쪽을 스쳤다.

“오늘 점검, 평소랑 달라. 샘플 검사일도 아닌데 장비 점검부터 시작하고… 왜 하필 우리가 있는 데를?”

그녀는 뒤쪽 보관함 문을 두 번쯤 열었다 닫았다. 행여 뭔가 잘못되었을까 불안한 모양이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봉인 실을 조심스럽게 끊었다. 금속 뚜껑을 열자 미세한 전자음과 함께 박스 안에 냉각제가 증기를 내뿜었다. 중앙에는 암호화된 데이터 카드 한 장과 희미한 붉은색의 세포 샘플 튜브.

지령서 뒷장엔 해독용 임시 아이디가 하나 더 적혀 있었다.

“분석은 내가 할게.”

내 목소리는 타인을 안심시키려 차분하게 내뱉었지만, 속에선 익숙지 않은 중압감이 요동쳤다.

유니가 조용히 다가와 내 옆에 섰다.

“맥, 혹시 무슨 일 숨기고 있는 거 아니야? 요즘 너, 예전이랑 다르게 보여.”

그녀가 내 어깨 너머로 박스 안쪽을 힐끔 들여다봤다.

“나도 알아. 오늘… 좀 별로야. 냄새가 나.”

수잔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중지손가락을 깍지에 감춘 채 연습삼아 그 손을 꽉 쥐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데이터를 리더기에 삽입했다. 모니터에 ‘접속 승인. 5분간 접근 가능’이라는 깜빡이는 메시지가 떴다. 화면 구성은 익숙했지만, 데이터 트리 하위에 알 수 없는 임시 폴더가 한 줄 새로 생성된 게 눈에 들어왔다. 누가 봐도 평범한 임상 데이터처럼 보였지만, 파일명 구조가 뭔가 어색했다.

“리뷰용 샘플 파일에 왜 날짜 없는 폴더지…?”

유니가 빠르게 키를 두드렸다.

나는 잠깐 숨을 고르고, 혹시나 단서가 더 있을까 몰래 시스템 백엔드 로그를 확인했다.

0.2초 남짓—관리국 서버 주소에서 자동으로 입력 기록이 전송되고 있었다.

“이거, 우리한테 일부러 준 거 아냐?”

수잔이 내손 위에 파일 인쇄물을 툭 얹어주었다.

“관리국 사람들, 어제 저녁부터…” 그녀는 끝말을 삼켰다.

누군가 유리문 너머를 지나가는 발소리가 났다. 내장의 끈적한 긴장이 목구멍까지 치밀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건드리지 마.”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두 사람 모두 몸을 움찔 떨었다. 나는 데이터 카드를 다시 봉인하고, 샘플 튜브를 냉동 보관고에 밀어 넣었다.

작업대 위 체온 측정기 램프가 붉게 번졌다 꺼졌다.

이상하다. 평소와 같은 과정인데, 오늘은 모든 공기가 나를 더 조여온다.

수잔이 희미하게 한 번 웃었다.

“괜찮으면, 커피… 한잔 줄까?”

나는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누가 봐도 군더더기 없는 동작. 내 손가락 끝은 이미 땀으로 젖어 있었다.

밖 복도에선 또다시 관리국 명찰을 단 사람들이 바쁘게 오갔고, 점점 실험실이 섬처럼 고립되는 기분이 들었다. 컴퓨터 화면에 아직 꺼지지 않은 임시 폴더, 그리고 봉투에서 스치는 알코올 냄새가 내 신경을 끝끝내 자극했다.

A등급 지령.

나는 오늘, 평상시와는 전혀 다른 리듬으로 아침을 살아가고 있었다.수잔이 조심스럽게 플라스틱 컵을 작업대 구석에 내려놓는다. 커피 향은 거의 없고, 미지근한 물기만이 잔잔히 번진다. 그녀가 건네려는 말은 가까스로 혀끝에서 머뭇대다 이내 묻힌다. 나는 모니터에 남은 채팅창 기록을 흘끗 훑는다—별다른 단서는 없다. 화면 구석의 임시 폴더가 여전히 ‘읽기 전용’ 상태로 깜박이고, 얼핏 전류가 흐르는 것 같은 불규칙한 진동이 손목까지 전해져 온다.

유니가 서류 봉투 가까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맥, 혹시… 데이터에 뭔가 숨어 있진 않은지, 다시 확인해볼래? 예전에 B등급 임상 샘플에서도 이상한 로그가 남았었잖아.”

내 손가락이 화면 위 버튼을 망설이며 돈다. 지금은 사소한 실수 하나가 곧바로 관리국 쪽 의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밖에서 복도 스피커가 짧게 웅웅거린다. 금속성 안내음.

“30분 후, 약 복용 상태 전수점검 실시합니다. 해당 부서 인원은 대기하십시오.”

기계적 음성이 실험실 안까지 천천히 스며들었다. 수잔의 입술이 거의 들리지 않게 흔들리지만 별 말은 없다.

나는 숨을 얕게 들이마신 다음, 다시 임시 폴더의 속성을 확인한다. 암호화 키 열린 시간은 정확히 다섯 분. 이 짧은 틈, 무언가—작은 깨짐, 혹은 흔적이—남아 있다면 지금뿐이다.

손목 속 미세한 맥박이 다시 뛰기 시작한다. 유니가 내 곁에서 조심스럽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의도적으로 감시 카메라 반대 방향에 선다.

“맥, 급하면 나중에라도… 꼭 말해. 아무 일 없는 척하지 마.”

그녀의 말이 끝나자, 실험실 천장 위 백색 조명이 일순 흔들리며 희미하게 깜빡인다.

나는 잠깐 그녀를 바라본다. 침묵 위로, 봉투에서 살짝 비치는 붉은 도장이 다시금 내 눈에 들어온다. 아무것도 아닐 거라 스스로를 설득하려 하지만, 등 뒤로 차가운 땀이 느리게 번져간다.

아직 아무도 이 작은 틈을 완전히 지나치지 못했다. 내 손끝은, 비밀번호 입력창 위에서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경보등이 복도 쪽에서 다시 한 번 번쩍인다—이번엔 좀 더 길게, 좀 더 경계하라는 신호처럼.

문 너머로 두 사람의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점점 실험실 쪽으로 가까워진다.

그 짧은 침묵 속에서, 나는 마침내 새로운 접근 코드를 누른다.

임시 폴더가, 조용히 열린다.

화면에는 아무것도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파일 목록 맨 아래, 날짜도 제목도 없는 작은 텍스트 파일 하나가 미묘하게 빛나고 있다.

누구도 아직, 숨을 깊이 들이마시지 않았다.

결정적인 순간은, 바로 눈앞에서 조용히 열리고 있었다.나는 약간 굳은 손끝으로 그 이름 없는 텍스트 파일을 클릭했다. 파일 크기는 고작 몇 킬로바이트—그러나 열리는 속도까지 어느새 느려진 감각.

하얀 화면, 그리고 맨 처음 보이는 것은 기이할 만큼 단순한 암호 문자열.

_45d-190724//ptn₁. IA∷𝜓|

아무도 해독하지 못할 무의미에 가까운 기호들이었으나, 내 눈은 그 짧은 줄의 배열 방식, 접두사의 리듬—그 틈에 숨겨진 규칙성—을 본능적으로 쫓았다.

서류 너머, 수잔과 유니 모두 숨죽인 채 내 손끝의 움직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자기도 모르게 창의 일부 복사 버튼을 눌러 가상 해독창에 붙여넣고, 빠르게 내부 테이블을 조회했다.

눈앞에 흐릿하게 뜨는 결과. ‘일치 없음’.

그런데—

잠깐, 접미 코드의 특정자리, 앞서 저항 조직에서 유출된 암호 패턴의 일부와 어렴풋하게 닮아 있었다.

심장이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한 번 강하게 고동쳤다.

관리국 서버에 바로 전송된 임상 로그—아까 그 주소와 어딘가 오랫동안 쌓여온 의심이, 마치 순간 연결음처럼 이어졌다.

옆에서 유니가 아주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맥… 그거, 혹시 지난달 복원 샘플에서 봤던 암호 규칙이랑…?”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해. 그런데 완전히 같진 않아. 여기—이 기호 조합, 일부러 변조됐을 수도 있어.”

정확히 말해, 감정억제약 샘플이 아니라면 이런 암호가 이 데이터에 포함될 이유가 없다.

관리국이 우리를 떠보는 건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수잔이 곁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내 어깨 너머로 서류 위 붉은 도장과 박스 속 검은 그림자를 번갈아 바라본다.

“분석 이력 남기지 말고, 임시 창에서 지워. 혹시… 로그라도 남으면 곤란해.”

그 말 뒤에 담긴 두려움이, 미지근한 공기 속에서 사각거린다.

나는 손끝을 바삐 움직여 복사 내역을 삭제하고, 동시에 텍스트 파일의 속성에 접근했다.

수신자의 메타데이터.

‘외부 포트—рес_13|접근기한: 04:15’

러시아어 표식.

이곳 시스템엔 공식적으로 없는 접두.

그 순간 실험실 뒤편, 벽의 감시 카메라가 아주 느리게 방향을 바꾸는 소리가 난다.

나는 숨을 죽이고, 남은 4분을 빙빙 도는 시간 속에서, 그 암호 문자열 끝자락에 시선을 고정한다.

이것이 단순한 테스트가 아니라면, 무언가—

도려내지 못한 감정의 파열, 또는 누군가의 메시지가

분명히, 이 작은 공간 한복판을 조용히 뚫고 지나가고 있다는 감각.

바로 그때, 실험실 문 손잡이 쪽으로 이번에는 명확한, 단단한 두드림이 울린다.

내 시야 구석에, 수잔의 표정이 결정적으로 굳어진다.

“맥, 지금… 우리가 뭘 해야 하지?”

유니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지만, 뚜렷하게 나를 향한다.

나는 답하지 않는다.

손끝은 아직 파일 위에 머물러 있고, 실험실 천장 조명이 다시금 미세하게 출렁인다.

결정은, 아마 바로 이제 내려야 할 것이다.

문 너머로 관리국 담당관의 무거운 그림자가 복도 위에 또렷하게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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