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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

1

rookie.rebel

아침 여섯 시 삼십 분, 짙은 회색의 실내 조명이 센서를 따라 어렴풋하게 번진다. 항상 그렇듯, 나는 출입카드를 태그하며 연구실에 들어선다. 공기가 서늘하다. 어디선가 미세한 소독제 냄새가 번진다. 은빛 메탈과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공간 안에서, 기계 미음이 일정한 리듬으로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바닥엔 고정된 좌표에 맞춰 연미복처럼 정렬된 책상과 데이터 패드, 무채색 유니폼을 입은 연구원들—그 속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

손끝이 찬 패널 위에서 정확히 다섯 번을 튕기자, 실험 중인 약물의 농도와 부작용 그래프가 동시에 뜬다. 눈을 가늘게 뜨며, 전날 밤 기록한 데이터와 오늘 아침 자동 분석값을 교차 확인했다. 철저한 정확성, 오류 없이 반복되는 일상. 그러나 수치 밑에 미세하게 굴절된 곡선 하나가 마음에 걸린다. 예상보다 조금 가파른 기울기.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시선이 그곳으로 미끄러진다.

옆자리에서 실험복을 입은 유니, 짧게 인사를 던진다.

“맑음 데이터… 0.2포인트 변위. 원인 분석 중이야?”

나는 대답 대신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다.

“자동 회귀 한 번 더 돌려. 값이 튄 건지, 센서 교란인지.”

유니가 어깨를 으쓱하며 모듈러 패널을 두드릴 때, 작은 한숨이 피어났다.

이상하게 환기장치 소리까지도 칠판 긁는 소리처럼 거슬리게 느껴진다. 아무리 완벽하게 세팅해도, 뭔가 미세하게 뒤틀린 감각.

“오늘 정오부터 생체 모니터링 담당관 순회 점검 있다고.”

저쪽 연구원 장이 말없이 다가와, 평범한 목소리로 건넨다. 모두 알면서도 짧게, 마치 의미 없는 일상처럼.

“실험 구간 보안 모듈 재점검 했지?”

“응, 두 번,” 나는 짧게 대꾸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침부터 손이 식은 땀에 젖어 있었다.

연구원들 사이엔 묘한 침묵이 남았다. 누군가, 조금 느리게 타이핑하는 소리. 그 조용한 틈에, 누군가 새로운 부작용 리포트를 올린다.

“혹시 오늘 오전 테스트 중… 감정 반응 수치가 평소보다 높았던 대상 있었나?”

수잔이 물었고, 잠시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나는 모니터에 뜬 그래프를 보며 짙은 불안을 느낀다.

“CT-4 실험군에서, 0.3포인트. 일시 변동. 보고는 해뒀어.”

나는 너무 빠르게 답했다. 정말로 그게 ‘보고’에 충분했는지—순간 의심이 스쳤다.

유니가 시선을 모니터로 내리깔며 조심스럽게 말한다.

“이런 변동, 최근 들어 자주 반복돼. 보안 쪽… 괜찮은 거 맞아?”

“시스템상으론 문제 없어. 그런데…”

내 말끝이 흐릿해진다. 진짜 문제는 약의 ‘완벽함’이 아니라, 우리가 들여다보지 않은 그 작은 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감각. 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실험실 안엔 다시 기계음만 맴돈다. 서로 말이 적어질수록, 나는 점점 더 내 안의 죄책감 진흙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손등에 맺힌 식은땀, 꿈꿨던 멜로디들이 희미하게 뒤집히는 기분.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나는 모든 걸 의심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국가의 명령, 약물의 효과, 그리고… 나 자신.

그때, 디스플레이 한쪽에 붉은 점이 말없이 번졌다. 통상적 오류 신호. 하지만 오늘은, 미묘하게 늦게 꺼졌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모두들 다시 자신의 세계로 몰두한다. 하지만, 이 침묵 밑에 흘러가는 감정의 미세한 파동. 아무도, 완벽히 숨기지는 못한다.

점심시간 안내음이 흐르기 전, 누군가 커피포트에 물을 부으며 중얼거린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세상… 어때, 맥?”

“이미, 다들 익숙하잖아.”

내 목소리는 지나치게 조용하다. 벽에 반사된 내 표정, 아주 잠깐 흩어진다.

그리고, 나는 다시 데이터에 머리를 파묻는다.

아직은, 내 불안도 침묵도, 이 금속실 안을 완벽하게 뚫지 못한다.그러나 숫자 뒤편에서, 뭔가 다른 욕구가 자라나는 기분을 떨칠 수 없다. 데이터 패드를 스치며 손끝이 살짝 떨릴 때면 어쩐지, 내 신경 또한 회로처럼 미세하게 과열되는 듯하다. 환풍구 쪽을 힐끔 바라본다. 누군가의 숨소리, 혹은 거친 기계의 진동이 그 너머에 섞여 있다.

“맥, 오후에 약물 샘플 쪽 추가 데이터 들어오면 바로 공유해줄 수 있어?” 수잔이 다시 묻는다. 그녀의 목소리엔 지침 없는 피로와 무표정이 얹혀 있다.

“응. 추출값 정리해서 바로 보낼게.”

내 말은 평온하게 흘러나오지만, 머릿속에서는 아까 그 미세한 곡선이—마치 볼록렌즈에 번진 금속 조각처럼—계속 반복 재생된다. 노트에선 작은 아지랑이 같은 의심, 그러나 말로 옮기면 순식간에 무의미가 되어 사라질 불안.

의도적으로 커피잔을 집는다. 모노톤의 연구실 구석, 환기구음과 타닥이는 키보드 사이로, 불현듯 실험 구간에서 벨 소리가 짧게 울린다. 모두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든다. 익숙한 절차, 그러나 조금 더 느린 움직임. 순간적으로 시선이 겹치고, 그 틈에 누구도 말하지 않은 무언가가 스며든다.

누군가 입꼬리를 희미하게 내리고, 나는 다시 모니터에 시선을 붙잡는다. 손끝에 식은 커피가 닿아온다. 그렇지만 이제, 불안은 나 혼자가 아니란 사실만이, 덩굴처럼 실내 공기를 더 서서히 감싸는 것 같다.

잠시 뒤, 조용히 내려앉은 정적을 깨고, 옆자리 유니가 낮게 중얼거린다.

“맥, 혹시… 오늘은 피아노 칠 생각이 있어?”

순간 나는 손끝에 힘이 들어가고, 그 물음에 대한 망설임이 공기 위를 맴돈다.

실험실 천장 위 조명은 미세하게 흔들리고, 어딘가—누군가가 숨을 깊이 삼키는 소리마저 이 공간의 일부가 된다.

나는 대답 대신, 잠깐 천천히 눈을 감는다.

그 어둠 속에서, 되살아나는 멜로디 한 조각이 살금살금 마음 한구석을 두드린다.

그러다 문득, 문 넘어 기계식 도어록 소리가 아주 작게, 일정하지 않게 변주되어 들려온다.

그 틈, 모두가 잠깐 동작을 멈춘다.

누가 들어오는 걸까, 아니면—혹시, 점검 담당관이 평소보다 더 일찍 도착한 걸까?

구두굽 아래로 잔잔하게 번지는 긴장감.

아직 아무도, 한마디도 내지 않는다.

내 손엔 식은 커피가 남아 있다.천장 조명이 바삭하게 깜빡이며 상공의 소음을 무디게 깎아내린다. 누구도 먼저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내 숨은 자연스럽게 얕아지고, 옆자리 유니의 손끝이 노트 위에서 조용히 멈춘다. 금속 도어록이 두 번, 아주 가볍게 다시 울린다. 기계의 틈에 껴버린 금속 결 같은 불안.

복도 쪽 공기가 약간, 냉기와 함께 흔들렸다. 드디어 문의 센서등이 한 차례 초록에서 붉은빛으로 번들거렸다가 바삐 빛을 껐다. 누군가가 복도밖 그림자 너머 서 있다. 평소와 다르게, 문이 열리는 속도 역시 잠시 멈칫거린다.

순서에 따라라—마음속에 각인된 통제의 절차. 나는 무표정한 표정 그대로 커피를 한 모금 삼키고, 데이터 패드의 화면은 변동이 없는 척 그대로 띄워둔다. 숨소리가 방울처럼 쏟아진다. 옆자리 유니는 작은 알림음을 기다리듯 손끝을 책상 밑으로 내린다.

철컥—현관문이 드디어 왼편으로 미끄러진다. 관리국의 단색 유니폼, 어깨에 푸른빛 계급줄이 가는 남자가 실험실 안을 가로질러 들어온다. 낯익은 유형의 점검 담당관이다. 그 뒤로, 데이터 수거 트레이가 드르륵 미끄러져 따라온다.

그의 시선은 우리 한명 한명을 지나간다. 우리는 익숙한 동작으로 인사한다.

“금일 오전 모니터링 로그—전원 정상 복용 확인중.”

담담하게 내뱉는 목소리, 그러나 튕기는 어조엔 인위적인 냉정이 스며 있다.

나는 두꺼운 유리 너머 벽에 번져 있던 내 흐릿한 표정을 슬쩍 훔쳐보고, 손끝으로 식은 커피잔을 내려놓는다.

“CT-4 데이터 변동 기록, 방금 업로드했습니다.”

목소리가 내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점검 담당관은 모니터를 한 번 훑어보고, 내 쪽을 향해 한 박자 느리게 고개를 끄덕인다.

“변동 기록 내역, 별도 이관 예정. 오후엔 감정 반응 레벨 집중 재점검 들어갑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실험실 공기가 한순간 밀려드는 파도처럼 무겁게, 다가온다.

옆자리 유니가 의자 등받이에 더 깊숙이 등을 묻고, 실험실 구석에선 누군가 작은 메모지를 구긴다.

나는 문득, 내가 숨을 너무 오래 참았다는 걸 깨닫는다.

점검관의 시선이 잠시 내 손등 위에 머문다.

그 짧은 순간, 생체 모니터 표면에 닿은 내 미세한 맥박이—내 의지와는 달리—속도를 조금 높인다.

고요한 회색 공간 안에, 새로운 긴장의 파문이 퍼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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