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소럴로소
교실 복도는 이미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잡다한 소음으로 가득했다.
눈 오는 아침이라 문틈마다 눅눅하고 차가운 공기가 들이치고,
교실 앞 신발장에는 추운 날씨에 그만 얼어버린 운동화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나는 교복 윗주머니 단추를 하나 더 잠그면서, 옆에 바짝 붙어 걷는 은재의 손 끝이 스치듯 지나가는 걸 느꼈다.
"오늘 날씨 정말 좋다, 마치 스노우볼 속의 풍경 같지 않아?"
은재가 의도적으로 평온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지만, 그 평온함이 왠지 답답하게 느껴졌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순간 시선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등 뒤로, 아직도 복도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들과,
투명한 창문 너머로 눈이 내리다가 진짜로 조금씩 비가 내리는 운동장.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허리를 세우고 가방을 책상에 툭 올렸다.
자연스럽게, 은재도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나와 눈을 마주치려 들지 않고, 책상 위에 필통만 지긋이 올려뒀다.
교실 구석에선 친한 친구들 무리들이 가벼운 장난을 주고받았고,
창가 쪽의 아이들은 빗방울의 개수를 세면서 아무 말 없이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틈에서 정다윤이 느릿하고 여유롭게 내 앞으로 걸어왔다.
약간 단정한 단발머리에 항상 투명한 안경을 쓰는 다윤은, 마치 질문이라도 할 듯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윤이안, 혹시 오늘 수학 쪽지시험 결과 나오는거 기억나냐?"
웃는 얼굴이었지만, 시선이 묘하게 싸늘했다.
내가 무심히 시선을 피하자, 옆에 있던 은재가 먼저 끼어들었다.
"야, 시험 얘기는 그만해. 어차피 공부는 다윤이 네가 더 잘하잖아."
다윤은 어깨를 으쓱이고,
"그냥 친한 친구니까 물어본 거야." 라며 뒷머리를 쓸었다.
무심한 듯, 그러나 꼭 확인하듯 내 얼굴을 한 번 더 훑으며 미세하게 웃었다.
그때, 교실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또렷하게 닫히는 소리, 그리고 희미하긴 해도 권위적인 걸음걸이,
새로 부임한 담임 임태원 이었다.
왁자지껄하던 아이들은 순식간에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서 앉았다.
그는 침착하게 손목시계를 만지작거리며, 아무 말 없이 한 명씩 자리를 훑었다.
그 시선이 내 책상 앞에 머무는 순간, 숨이 조금 턱 막혔다.
임태원은 누구보다도 눈에 띄지 않는 걸 잘 알아챌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자, 오늘은 아침부터 모두 좀 조용해볼까요."
낮고 로봇같이 일정한 목소리, 분명 차가웠다.
임태경은 조용히 교탁에 서서 출석부를 넘겼다.
"출석 확인할게요."
내 시선은 저절로 칠판으로 자리를 옮겼다.
깨끗하게 지워진 칠판, 그 구석에 어설프게 붙여둔 연보라색 안내문,
‘미리내 천문공원 별 관측 행사. 신청은 이번 주 금요일까지.’
날짜랑 시간, 담당 지도교사 이름까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안."
어제까지만 해도 무심히 넘겼던 안내문이, 이상하게 오늘은 손끝에서 간질거렸다.
행사를 멍하니 바라보다, 어느새 연필을 쥐고 있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 걸 느낀다.
복잡한 공식을 그리던 내 옛 버릇이 불쑥 되살아오려고 했다.
"....윤이안."
임태경의 낮은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퍼진다.
"이안아."
은재가 볼펜 뚜껑을 닫으며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불렀다.
어깨 너머로 다윤의 한숨 섞인 숨소리가 짧게 들렸고,
정신을 차려보니 교실엔 묘하게 정적인 기류가 돌았다.
"네."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나는 칠판 아래 안내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속삭이듯,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봉인해두었던 어떤 생각과 감각들이 퍼즐처럼 깨어나기 시작했다.
눈앞의 평범한 교실 풍경이 문득 낯설게 흔들려 보였다.
0화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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