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화 (프롤로그)
소럴로소
흰 눈이 하늘에서 소복소복 쌓이는 2029년의 어느 겨울날,
여느 떄처럼 직장에 다니는 회사원과 어른들은 오늘도 출근을 하고,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등교를 한다.
이안은 교복 위로 회색 후드티를 겹쳐 입은 채, 학교 앞 정류장 벤치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손끝이 얼얼할 만큼 매서운 바람이 불었지만, 그저 무심하게 손을 주머니 속에 찔러 넣었을 뿐이었다.
눈발은 점점 굵어지고, 흰 눈이 조용히 도시를 덮어가고 있었다.
아침 등굣길은 어느 때보다 고요했다.
버스에서 내리는 친구들 무리 사이에서 이안은 자연스럽게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누군가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가 조용히 다가와,
"이야, 우리 이안이, 오늘도 일찍 왔네?"
푸른색 머플러를 두른 은재가 미소를 머금고 앉았다.
그녀의 연한 숨결이 하얗게 피어올랐다.
이안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응. 눈이 많이 오니까 길이 미끄러울 것 같아서."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의 눈망울엔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흔적이 스쳤다.
은재는 이안의 후드티 소매에 묻은 눈을 털어내 주며, 괜히 사소한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1교시 체육인데... 이런 날엔 운동장 청소로 대체될지도 모르겠네~"
속삭이듯 나지막한 그녀의 목소리.
하지만 그 속에 감춰진 의도는 이안에게 닿지 않고 흩어졌다.
"그럴 수도 있겠네."
이안은 시선을 교문 쪽에 둔 채 짧게 답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두뇌 어딘가에서 희미한, 찌릿하는 감각이 번졌다.
학교 담장 위에 쌓여가는 눈, 우산을 접는 아이들, 먼발치에서 서성이는 남학생 하나까지,
익숙한 장면들이 뜻도 모를 수식처럼 머릿속에 어렴풋이 떠올랐다.
이안은 반사적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은재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왜 그래? 머리 아파? 아침부터?"
"아니, 그냥... 조금 멍해서."
그는 평소처럼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손끝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눈발 사이로 울리는 학교 종 소리에, 두 사람은 무언의 대화를 나눈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은재가 앞장서 걸으며, 무심한 척 질문했다.
"음....이안아,"
"....왜?"
"오늘 학교 끝나고 나랑 도서관 들를래?"
이안은 대답 대신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던지."
하지만 아직 대답은 마음 한켠에서 굳어지지 않았다.
흩날리는 눈송이 너머로, 은재의 낮은 미소와 한없이 조용한 시선이 겹쳐졌다.
교문 너머로 이어지는 발자국 소리, 그리고 그 위로 조용히 내려앉는 눈.
이안은 발끝에 힘을 주며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은재는 그런 이안을 아주 조그마한 미소로 지긋이 처다보며 그의 뒤를 천천히 뒤따른다.
어딘가,
아주 오래전부터 이 장면이 반복되고 있던 것만 같은,
익숙하고 이질적인 예감이 스며들었다.
1화
평범하기 위해서 천재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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