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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9

7화_추정과 사실

소럴로소

"딩.....딩....딩..."

아침 조회 5분 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왔다.

나는 서둘러 내 반인 2학년 ζ(2)−⌊π⌋반으로 갔다.

복도 양쪽 창문 밖은 안개가 자욱했다.

겨울의 끝자락, 흐릿한 햇살이 창틀 너머로 비껴들며 복도 바닥에 흐린 빛무리를 그렸다.

교실 문 앞, 문득 걸음을 멈췄다.

손에 든 노트북의 무게가 갑자기 낯설었다.

전에 마틸다와, 그리고 이도윤 교장과 나눴던 대화가 머릿속을 빙빙 돌았다.

‘단 한 수’, ‘통제할 수 있는 힘’

그 말의 무게와 의도가 파고들었다.

내 손끝엔 아직 체스 나이트가 들려 있었고, 그 단단한 감촉이 현실감을 주었다.

문 앞에 슬쩍 기대어 교실 안을 엿봤다.

학생들 몇 명이 이미 자기 자리에서 조용히 노트를 펼쳐 들고 있었고, 빔프로젝터 아래엔 담임이 컴퓨터를 점검하고 있었다.

일상과 비일상이, 문 하나를 두고 맞닿아 있다.

비밀번호, 해시값, 라틴어 문장—그 인위적 질서와, 이 일상적인 교실의 풍경이 이상하게 겹쳤다.

한걸음 들어서자 몇몇 아이들이 힐끔 내 쪽을 바라봤다.

시선이 잠깐 스쳐 지나가고, 곧 아무 일 없던 듯 각자의 노트에 시선을 내렸다.

나는 평온한 척 자리에 앉았지만, 눈앞엔 여전히 복도 끝 그림자와 이도윤의 눈빛이 일렁거리면서 맴돌았다.

가방을 열자, 그 안에 아까 마틸다가 준 쪽지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작고 각진 쪽지 위로, 라틴어와 숫자의 조합이 새까맣게 찍혀 있다.

나는 그것을 책상 아래로 슬쩍 집어넣으며, 주변의 낯익은 소음과 냄새, 교실 특유의 먼지 속에 숨어드는 심장 박동을 느꼈다.

“시라이시.”

등뒤에서 누군가 귓속말처럼 낮게 불렀다.

익숙한 목소리, 루이였다.

그는 창가에서 눈길을 떼지 않은 채, 교실 풍경 너머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 미묘한 시선의 방향이, 내 손에 쥔 나이트 말에 잠깐 머문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루이의 눈매엔 밤샘의 피로가 엷게 남아 있으면서도, 어딘가 숨겨진 결의가 번지고 있었다.

그의 입꼬리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미세하게 올라간다.

“아침부터 바쁘군.”

나는 짧게 답했다.

“오늘도 평소와는 좀 다르니.”

루이가 실눈을 뜨며 속삭였다.

“오늘, 무슨 일이 시작될 것 같지 않아?”

교실 바깥 복도, 닫힌 유리문 너머로 멀찍이 교장실 방향이 보였다. 어스름한 안개, 그리고 잔잔한 긴장. 나는 손으로 노트북을 다시 움켜쥐었다.

“가끔 평범해 보이는 판에서—의외의 첫 수가 던져지는 법이지.”

내가 말하자, 루이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종이 한 번 더 울렸다.

"딩...!"

나는, 아직 풀리지 않은 쪽지의 암호와, 곧 시작될 뭔가의 낌새를 교실 틈새로 느꼈다.

그리고, 조용한 아침 회색빛을 가르며 복도 저편에서 또 한 번, 낮은 신호음이 미세하게 울렸다.

아무도 모른 척 하고 있지만, 이제 곧 모든 판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걸 나만은 알았다.

내 옆자리에 앉은 루이가 살짝 몸을 내 쪽으로 돌리며, 목소리를 더 낮췄다.

“오늘 들어오는 질문, 정답 말고 해석을 조심해. 미묘한 단어들이 있더군.”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 말 한마디가 언뜻 평범했지만, 루이가 보내는 신호는 단순하지 않았다.

어느새 그의 손등이 교실 책상 아래, 내 노트북 가까이에 다가와 있었다.

사람들 눈길이 닿지 않는 각도였다.

루이가 내 쪽으로 손가락 하나를 툭 내보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네가 가진 조각, 이미 누군가 눈치 챈 것 같아. 오늘 오전에, 정보실 쪽에서 수상한 접속기록이 잡혔대.”

나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

오전, 정보실, 접속기록.

그 짧은 단서들이 머릿속을 거미줄처럼 연결하기 시작했다.

루이의 시선이 잠잠히 내 얼굴을 훑고,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표정엔 아무것도 드러나 있지 않지만, 손끝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복도를 따라 또 한 번, 짧은 신호음이 울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패턴을 만들고 있다고 느껴졌다.

아까 마틸다의 말, “이제부턴, 우리 둘 다 위험에 노출돼 있어” 가 귓가에 울렸다.

나는 옆에서 은근히 펼친 쪽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숫자들, 라틴어 단어,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잡느라 반들반들해진 모서리.

그 순간, 담임이 짧게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일제히 이름에 대답하는 사이, 나는 너무 익숙한 소음 뒤에서, 내 손바닥에 닿은 체스 나이트의 단단함을 느꼈다.

판은, 아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루이가 가만히 속삭인다.

“오늘, 한 수 둬라. 일찍 움직이는 쪽이 운명의 방향을 잡게 돼.”

나는 그 말에 짧게 웃었다. 낡은 체스 말이 돌면서, 내 속마음도 천천히 털어지는 것 같았다.

아직, 첫 수는 내 손안에 있었다.

담임의 목소리에 교실이 고요해지고, 창밖엔 이른 아침 안개가 더 짙어져만 갔다.

그리고 복도 건너 유리문 너머, 누군가의 그림자가 일 순간 스쳐 지나갔다.

나는, 본능적으로 숨을 잠깐 고르며, 다시 쪽지와 노트북 위를 찬찬히 바라봤다.

모든 선택이, 이제 막 가시권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오늘은, '힐베르트 함수' 에 대해서 공부하도록 하자. 교재 135페이지다."

담임이 칠판에 분필로 '힐베르트 함수' 라는 단어를 어딘가 어눌한 영어 필기체로 써 내려갔다.

"“여러분, 오늘은 힐베르트 함수라는 개념에 대해 깊이 있게 다뤄보겠습니다.

이 함수는 대수 기하학과 대수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개념 중 하나로, 우리가 다루는 수많은 대수적 대상들,

예를 들면 다항식으로 이루어진 아이디얼, 혹은 기하학적 다양체들의 내재된 구조와 성장 양상을 분석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입니다."

"우선, 힐베르트 함수가 왜 필요한지 그 배경부터 이야기해 보죠.

"우리가 다항식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어떤 특정한 아이디얼, 즉 다항식들의 부분집합을 생각할 때, 이 아이디얼이 단순한 집합 이상의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아이디얼을 차수별로 쪼개어 생각해 보면, 차수가 낮은 항들부터 높은 항들까지 각각의 부분 공간들이 존재합니다.

이 각각의 부분 공간은 벡터 공간의 형태를 띠고 있고, 각 차수별 부분 공간의 크기,

즉 차원을 측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관점이 됩니다."

"여기서 힐베르트 함수가 등장하는데, 힐베르트 함수는 바로 이러한 차수별 벡터 공간의 차원을 대응시켜,

'각 차수에 대해' 로 정의됩니다."

"여기서 이 식은 '차수' 에 해당하는 부분 공간을 뜻하며, 이 식은 그 공간의 차원을 나타냅니다. "

담임은 또 알아보기 힘든 필기체로 칠판에 식을 휘갈겨 쓴다.

"다시 말해, 힐베르트 함수는 아이디얼이 얼마나 ‘큰지’, 또는 ‘복잡한지’를 수치적으로 나타내는 척도가 되는 거죠."

"흥미로운 점은, 이 힐베르트 함수가 단순한 수열이 아니라, 특정 차수 이상에서는 다항식,

즉 힐베르트 다항식으로 완벽히 표현된다는 사실입니다. "

"이 힐베르트 다항식은 아이디얼의 차원과 차수를 정확히 반영하는 함수로,

우리가 아이디얼이 무한히 확장될 때 그 성장 양상을 예측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쉽게 말하면, 아이디얼이 무한대로 커져도 그 복잡도는 결국 이 다항식에 의해 ‘정확하게’ 규정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특성 덕분에 힐베르트 함수와 다항식은 대수기하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왜냐하면 복잡한 대수적 구조들을 일일이 분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 함수와 다항식을 통해 그 구조의 본질적인 속성, 예를 들어 차원, 차수, 그리고 성장률 등을

수학적으로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이는 마치 우리가 미지의 영역을 탐험할 때 지도를 펼쳐 들고 방향을 잡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죠.

또한, 힐베르트 함수는 여러 분야와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대수적 위상수학, 모듈 이론, 호모로지 이론 등에서 이 함수는 공간의 특성을 연구하는 데 있어 기본적인 도구로 쓰입니다."

"실제로, 복잡한 공간의 ‘크기’와 ‘형태’를 계량화하는 데 있어 힐베르트 함수가 없으면 불가능에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힐베르트 함수는 단순한 함수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복잡하고 추상적인 대수적 구조들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언어’이자 ‘지도’이며,

나아가 수학의 여러 분야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힐베르트 함수를 배울 때 가장 유념해야 할 점은,

이 함수가 ‘성장’과 ‘구조’를 함께 담아낸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크기를 재는 도구가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상이 어떻게 변화하고 확장되는지,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어떤 본질적인 특징들이 유지되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열쇠라는 점을 기억하세요.”

담임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무의식적으로 노트북 화면을 희미하게 켜 두었다.

화면 구석에서 여전히

[connection unstable]

붉은 경고 문구가 깜박이며, 시스템 상태창이 요란하게 퍼져 있었다.

칠판에 흰 분필이 긁히는 소리.

교실 전체엔 수학개념의 무게가 깔렸지만,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복도에서 흘러들어온 신호음이 잔향처럼 맴돌았다.

책상 아래, 나는 마틸다가 준 쪽지를 다시 펼쳤다.

그 속의 숫자와 라틴어가 ‘성장’과 ‘구조’라는 담임의 설명에 희미하게 겹쳐지기 시작했다.

이 두 단어를 기준 삼아 암호의 패턴을 바꿔 읽어 보면....

어쩌면 거기에 숨겨진 메시지가 있을지도 모른다.

루이가 옆에서 천천히 노트를 펴들며, 속닥이듯 짧게 적는다.

“오늘 중간 휴식때, B동 서고 뒤쪽에서 보자.”

노트의 귀퉁이에 쓰인 필체. 한순간 시선이 마주쳤다.

그의 동공 너머로 어딘가 교실의 긴장과 작게 꿈틀대는 불안이 읽혔다.

잠깐, 담임의 시선이 내 시선 위를 스쳤다.

나는 저절로 등을 곧게 펴고, 교과서 135페이지로 손을 옮겼다.

하지만 머릿속엔 아까 본 그림자, 쪽지의 암호, 그리고, “통제할 수 있는 힘” 그 말이 흘러다녔다.

교실 맨 뒤 창가 쪽, 누군가 바깥을 유심히 바라보는 기척이 감지된다.

짙은 안개, 흐른 빛살, 그리고 흩어진 학생들의 작은 움직임 사이로 순간 낯선 시선이 휘돌아간다.

그 순간, 내 노트북 화면 아래 메신저 아이콘이 조용히 깜빡였다.

_Matilda_st_

_메시지 도착:

"수업 중엔 움직이지 마. 데이터는 이미 번역 중. 단, ‘성장’을 역방향으로 읽어봐. 좌표가 거기 있어."

마틸다의 메시지였다. 나는 숨을 들이쉬며 쪽지와 교과서, 노트북에 시선을 골고루 분산시켰다.

교실의 평온한 리듬은 유지되고 있지만, 내 손끝과 눈동자 안에는 섬세하고 위험한 흐름이 자꾸만 번져간다.

담임의 목소리는 여전히 수식과 개념을 설명하지만, 내 안에선 또 다른 방정식이 조용히 맞춰지고 있었다.

칠판 위, 힐베르트 함수의 약자가 크게 적혔다.

나는 교실 한복판에 앉아, 체스말을 손안에서 한 번 돌려쥐었다.

다음 신호는 어디서 나타날까.

또 다른 첫 수를, 누가 가장 먼저 놓을까.

교실 뒤편 어디선가 또 낮은 신호음이, 아주 미약하게,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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