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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7

7.대화를기록 Record the conversation

세상을그리다.

나탈리아와 학생들, 그리고 나를 따라 골목 안쪽을 천천히 걷다 보면 아스팔트와 오래된 연탄잿빛 길 사이에 은근히 고여있는 냄새가 코끝을 맴돈다. 파란색 조명이 간신히 깜빡이고 있는 오래된 간판, ‘낙엽집회소’. 나는 괜히 숨이 막히는 듯 카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여기가…?” 나탈리아가 먼저 안을 들여다본다. 무거운 나무문 너머 작은 카페, 벽엔 바랜 포스터와 누군가 급하게 붙여놓은 쪽지, 구석엔 유리병에 담긴 마른 단풍잎이 켜켜이 쌓였다.

그런데도 안에선, 말 없는 사람들이 각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낡은 털모자에 검은 조끼를 껴입은 노인, 짧은 스포츠머리에 청색 작업복 입은 이주노동자, 그리고 스마트폰 액정만 뚫어지게 보고 앉은 동네 사업가 최 사장. 네온 불빛 밑에선 서로 말 한마디 섞지 않았지만, 묘하게 온기가 돌았다.

“별 거 없네, 이 집.” 나는 일단 익숙한 듯 카운터 옆 창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탈리아는 두 손을 잔뜩 들고 부스럭거리며 안에 들어섰다. 학생들은 일제히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거나, 노트에 뭔가를 급하게 끼적이기 시작했다.

나탈리아가 숨을 고르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이 방… 음, 특별한 거 있어요?” 그녀의 한국어는 여전히 느릿하지만, 이곳에 쏟는 시선이 참 진지하다.

나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벽 한 켠에 걸려 있던 오래된 액자 하나를 가리켰다. “저거, 옛날 사진이다. 불난 집 터지고 남은 거. 저기 저분이…” 손끝으로 털모자 쓴 노인을 가리키자, 노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노트북 자판 두드리는 소리, 카메라 셔터 소리가 뒤섞여 흐른다.

노인은 내 쪽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사진, 내 부탁이야. 오랜만에 꺼내봐도 되겠나?” 그의 목소리는 마른 잎처럼 떨렸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내 앞치마 속에 숨겨둔 검은 봉투에서 빛바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예전에 현장 동료에게 받은, 불타는 집과 검은 연기 속에서 내 뒷모습이 겨우 보이던 바로 그 사진이었다. 카페 안 공기가 묵직해졌다.

나탈리아가 숨을 삼키며 다가왔다. “이거… 진짜예요?”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고 잠시 내 눈치를 본 뒤 조심스럽게 사진을 비췄다.

“아, 잠깐만요… 여기, 카페 자료에 써도 되죠?”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난 왠지 낯설게 쑥스러운 기분에 입을 닫았지만, 한켠에서 내 손등을 바라보던 그 노인이 작은 미소를 짓는다.

“저땐, 동네 사람들 다 거기 있었소. 그 땔감통 태운 게… 사실 내 집이었어. 일부러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노인이 멍하게 사진을 손끝으로 만졌다. “그때 네 덕에 살아남았지. 그러나 내 손녀는… 그때 잃었어.”

카페 안, 학생 한 명이 숨을 크게 들이키는 소리가 조용히 번졌다.

한쪽 구석의 이주노동자 아미르는 조그만 장난감 자동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허리를 펴며 내게 건넸다. “이것, 옛날 내 아들 거예요. 여기서 일하면서… 항상 가방에 있어요.” 한국말은 조금 어색했지만, 물건을 내밀 때 손끝이 아주 부드러웠다.

“각자의… 이야기가 있네요. 이거, 기록해도 돼요?” 만년필을 든 다른 학생이 긴장한 얼굴로 눈을 맞췄다.

나는 턱을 가볍게 끄덕였다. “그냥… 있는 그대로 써. 꾸미지 말고. 여기 사람들, 다 자기가 잃은 거 한두 개쯤 있어.”

학생들은 각자의 노트에 누군가는 ‘잃어버린 손녀의 사진’, 누군가는 ‘이주노동자의 장난감 자동차’, 누군가는 ‘최 사장의 부러진 안경테’를 적기 시작했다. 카페 구석구석, 숨은 사연들이 조용히 표정을 바꾸었다.

나탈리아는 카메라를 들고, 영어와 한국어가 뒤섞인 메모로 서둘러 대화 기록을 남겼다. “이 골목이… 그냥 동네 아닌 것 같아요. 할아버지, 왜 다 숨겨요? 더 들려주세요––”

나는 대답 대신 자리에 앉아 오래된 사진을 다시 손에 쥐었다. 바깥에서 문 바람이 휙 들이치고, 낙엽 몇 장이 무릎 위로 떨어졌다. 아스라한 연기 냄새와 오래된 나무 향, 그리고 무언가 잊어버릴 수 없는 것들이, 지금 이 작은 방 안에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나는 사진을 손에 쥔 채 한참 내려다봤다. 손끝에 닿는 감촉이 먼 데서 온 듯 낯설고 서늘했다. 문득, 맞은편 창가에 앉아 있던 최 사장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그의 검은 뿔테 안경이 한 쪽이 살짝 기울어져 있었다. 그는 말없이 우리를 바라보다,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여기도… 지운 흔적들이 많죠.” 그의 말에 낙엽집회소 안의 공기가 살짝 움직였다.

나탈리아가 망설이며 최 사장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사장님, 혹시… 그 이야기 들어도 돼요?”

최 사장은 잠시 손끝으로 옷자락을 만지작거렸다가, 허름한 큰 안경을 가만 내려 배우듯 우리를 한 명씩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부러진 안경테를 조금 들어올렸다.

“이거, 아버지 장례식 때 부러졌어. 그날 갑자기”—그는 잠시 목이 메인 듯, 목소리를 가다듬었다—“동네 어귀에서 달려오다가… 벗겨졌지. 아직도 고치지 않고 그냥 써.”

카페 안엔 조용한 숨소리만 맴돌았다. 한 학생이 노트 위에 조용히 ‘부러진 안경테’를 적었다. 잊히는 목소리, 그리고 남아 있는 기억들이 서로 실처럼 얇게 엮여 있었다.

그때, 창 밖에서 아이들이 쨍한 목소리로 부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재만 할아버지! 나오세요!” 익숙하지만 오래 들리지 않은, 동네아이의 목소리.

나탈리아가 놀라 두리번거렸다. 나는 무릎 위 낙엽을 슬쩍 털며 외투 깃을 고쳐 잡았다. 그 목소리에 어쩐지 가슴이 살짝 저려왔다.

“할아버지, 밖에 또 알아요?” 옆에 있던 학생이 속삭였다.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카페 구석, 빛바랜 사진 속 연기와 불길, 그리고 그 안에서 뛰던 내 뒷모습이 다시금 마음 밑바닥에서 움직였다.

밖에서 바람이 문을 우두둑 두드렸다. 그 안에서, 다음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오려는 듯 카페 안의 공기가 조용히 나를 압박했다. 나탈리아의 눈빛은, 또 다른 기억을 들을 준비가 된 채 내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나는 사진을 천천히 노인에게 되돌려주며, 아주 낮게 입을 열었다.

“모두 자기 나름의 화상 하나쯤은 안고 살아가는 거지.”

한순간, 카페 안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모였다. 밖에선 낙엽이며 바람소리가, 안에서는 아직 꺼지지 않은 질문들이 이 작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들의 어린 목소리와 조용한 기대 속에서 다음 말을 꺼낼지, 잠깐 호흡을 멈췄다.

6.안좋은연탄재를...Bad coal briquette 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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