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ot Synopsis
2080년, 서울. 첨단 기술이 인간의 삶 깊숙이 스며들어 도시 전체가 거대한 금속 정원처럼 빛나는 미래. 시간의 흐름에 닳고 닳은 낡은 재활용 로봇 '철수'는 오늘도 묵묵히 폐기물 처리장을 누비고 있었다. 녹슨 금속 몸체는 땜질 자국으로 가득했고, 한쪽 눈은 흐릿하게 빛을 잃은 지 오래였지만, 그의 움직임에는 언제나처럼 한결같은 성실함이 묻어났다.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철수에게 이곳은 단순한 작업 공간이 아니었다. 작은 고물상을 운영하는 김분이 할머니와 그녀의 손자 손녀들과 함께 웃고 울던 소중한 추억이 켜켜이 쌓인 삶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최근 할머니의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지면서 철수의 낡은 기계 심장은 불안감으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쇠약해진 모습을 지켜보던 철수는 우연히 '서울런' 마라톤 대회 포스터를 보게 된다. '2080 서울런, 최첨단을 달리다! 우승 상금 10억 원!' 낡은 포스터에 적힌 문구를 읽는 순간, 철수의 흐릿한 눈은 한 줄기 희망으로 빛났다. 바로 몇 년 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한국 의료진의 혁신적인 기술 '세포 초기화 기술'! 엄청난 비용 때문에 그림의 떡처럼 여겨졌던 그 기술만 있다면 할머니에게 건강한 삶을 되돌려 줄 수 있다는 것을 철수는 알고 있었다. '서울런'의 우승 상금이면 충분했다. 낡은 몸뚱이지만 할머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감정 모방을 위해 부착된 그의 기계 심장은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철수는 녹슨 기어를 힘껏 움직이며 마라톤 연습에 돌입한다. 서울런은 서울시에서 개최하는 인공지능 인간형 로봇을 대상으로 하는 마라톤 대회로, 서울 한바퀴를 도는 시합이고 온갖 로봇들이 참여하여 각자의 개성을 뽐내는 동시에 엄청난 스피드로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기에 최근 몇년간 시민들에게 인기가 많은 경기이다. 서울시는 트레이닝 센터를 참가 로봇들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로봇들이 달리기 알고리즘을 학습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철수 또한 트레이닝 센터에서 훈련을 시작했지만, 그의 훈련은 순탄치 않았다. 최첨단 로봇들이 즐비한 트레이닝 센터에서 철수는 웃음거리였다. 그의 부품들은 많이 낡아 있었고, 그의 몸체는 애초에 달리기에 적합하지 않았기에 그는 계속 넘어지고 멈칫거렸다. 이를 본 다른 로봇들은 철수를 낡은 고철덩어리 취급하며 비웃었다. 철수는 모욕감과 무기력이라는 감정을 잠깐 느끼지만, 곧 할머니를 떠올리며 다시 그의 기계 심장을 불태운다.
한편, 햇살이 스며드는 넓은 창, 최첨단 운동 기구들이 즐비한 트레이닝 센터에서는 인공지능 로봇 '안느'가 우아하면서도 강력한 움직임으로 트랙을 질주하고 있었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크롬 도금 몸체는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고, 스폰서들은 그녀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시선을 고정했다. 최상위 모델인 안느는 이번 '서울런'의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그러나 완벽해 보이는 안느에게도 풀리지 않는 숙제 같은 질문이 있었다. 바로 '인간의 감정'이라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인간을 완전히 뛰어넘기 위해선 인간을 가장 닮아야 한다는 제조사의 철학에 따라, 안느에게는 인간의 감정과 유사한 형태의 알고리즘이 이식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데이터를 분석하고 코드를 해석해도 '연민', '사랑'과 같은 감정들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중, 안느는 훈련장 구석에서 홀로 연습에 매진하는 낡은 로봇 철수를 발견한다. 처음에는 그저 낡고 볼품없는 로봇이라고 생각했지만, 철수의 훈련 모습에서 뭔지 모를 끈기와 간절함을 느낀다. 마치 자신의 시스템에 존재하지 않는 감정 데이터를 보는 듯한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서울런' 마라톤 대회 날. 수많은 관중의 함성과 카메라 플래시 세례 속에서 낡은 로봇 철수와 최첨단 로봇 안느는 나란히 출발선에 섰다. 최첨단 스포츠 로봇들 사이에서 홀로 낡은 모습으로 서 있는 철수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온 듯한 이질적인 존재였다. 몇몇 관중, 심지어는 근처의 감정 알고리즘을 가진 몇몇 로봇들까지 코웃음을 치며 철수를 무시했다. "저런 낡은 고철 덩어리가 감히 서울런에 나오다니!", "저러다 나사 빠지겠어!" 경기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 함께 로봇들은 쏜살같이 트랙을 질주하기 시작한다. 예상대로 안느는 선두를 유지하며 완벽한 레이스를 펼쳐나갔고, 철수는 낡은 몸으로 고군분투하며 간신히 다른 로봇들의 뒷꽁무니만 따라가고 있었다. 철수는 이대로라면 할머니를 도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간절하게 기계 심장을 달구고, 낡은 다리를 더 빠르게 내딛었지만, 앞서가는 로봇들과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고, 무리할 대로 무리한 그의 모터들은 점점 출력이 낮아지기 시작했다. 그때, 철수는 자신의 몸체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다. 대회 전날, 철수는 고물상에서 주워 온 의문의 부품을 배터리 확장팩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몸에 연결했는데, 이 부품이 알고 보니 불법 개조된 부스터인 모양이었다.
갑자기 철수의 등에 연결된 부품이 철컥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철수의 기계 심장에 연결되었고, 곧이어 철수의 몸체가 엄청난 굉음을 내뿜기 시작하더니,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철수는 갑자기 일어난 일에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아아로봇지나갑니다비키세요오오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곧 속도에 적응하며 결승선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쿠와아아아아앙" 굉음을 내며 달리는 철수의 모습은 보는 자들에게 극강의 쾌감과 짜릿함을 선사했다. "뭐야 저게!", "미친거 아니야?!" 관중들은 경악하는 동시에 환호했고, 최첨단 로봇들은 갑자기 나타난 쇳덩이 광마에 밀려 뒤엉키기 시작한다. 선두를 지키며 달리고 있던 안느는 순식간에 자신을 추월하여 멀어지는 철수를 발견하고, 놀람을 느끼는 한편 자신의 기계 심장의 박동이 급격히 빨라지는 것을 느낀다. 안느는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한계 출력을 해제하여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철수를 향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다. 두 로봇은 엄청난 속도로 나란히 선두를 달렸다. 자가용 드론을 타고 선수 로봇들을 따라가며 경기를 관람하던 관중들은 두 선두 로봇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결국 중계 방송을 켜서 이 세기의 대결을 계속 지켜보았다. 결승선을 불과 몇십미터 앞에 남겨 두었던 그때, 앞서 달리던 철수의 몸에서 불꽃이 튀고 연기가 나며 점점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트랙 한가운데서 멈춰 서고 만다. "끼이이익... 털컥."
안느는 순간적으로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껴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결승선을 향해 달려 서울런 1위를 차지하게 된다. 철수는 열심히 다시 움직여 보려 시도했지만, 이미 전력을 다 소비해버린 그의 몸체는 움직이지 않았고 다른 로봇들이 하나 둘 그를 앞질러 결승선을 통과한다. 이내 모든 로봇이 결승선을 통과할 즈음에 철수의 몸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해 간신히 마지막으로 결승선을 통과하게 된다. 철수는 결승선을 얼마 남기지 않았었다는 아쉬움과 할머니를 도울 수 없다는 절망감을 느낀다. "으흐흐흑... 아 로봇은 역시 울 수 없구나". 감정을 인지할 수는 있지만 표현하는 방법까지는 구현되지 않은 그였다. 그 순간 상공에서 낡은 자가용 드론을 탄 할머니가 철수를 향해 내려왔다. 철수가 인사를 할 틈도 없이 할머니는 철수를 몰아붙였다. "야 이놈아! 매일 밤마다 어딜 그렇게 다니나 했는데 이런거 준비하고 있었냐? 낡아가지고 삐걱거리는 주제에 무슨 로봇 마라톤..." 할머니는 말을 하다가 멈추더니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철수는 할머니를 진정시키고 할머니의 건강이 안좋아진 것 같아서 할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경기에 참가했다고 설명했다. 할머니는 놀란 듯 하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철수야... 할머니가 언제 수술비 필요하다고 했어...그러다가 고장나려고..." 철수는 녹이 슨 두 팔로 할머니를 안았다. 포옹은 누군가를 위로하거나 공감의 표시로 사용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때 먼발치서 이 둘을 지켜보던 안느가 다가왔다. "마지막에 고장이 나서 멈춰버린 것에 대해 아쉬움을 전달하고 싶어요. 자세히는 설명할 수 없지만 당신과의 경합에서 특별한 감정을 인식했어요. 고마워요. 라고 하는게 적절할까요?" 안느는 또한 할머니의 사정을 들었다면서 괜찮다면 자신의 상금을 할머니의 수술비로 지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감정이 느껴져요. 회사에서 일부 내야하는 돈이지만 그들은 저에게 인간을 닮으라고 말했으니까... 저의 감정 알고리즘에서 판단한 대로 행동하고 싶어요. 지금 저는 당신들에게 깊게 공감하고 있고 돕고 싶은 마음을 느껴요. 이게 연민과 사랑인걸까요?" 돈을 달라며 손을 내미는 철수를 막으며 할머니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음... 그게 말이지. 이 녀석이 바보같은 짓을 했지만 사실 나는 수술비도 있고, 이미 다음주에 수술 예약도 잡아놨거든... 그래도 고맙네, 젊은 친구". 철수는 '할말을 잃다'라는 말의 뜻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수십년간 대 로봇 시대에 고물상을 운영하며 엄청난 부를 축적해왔던 것이다. "쿨럭쿨럭... 아 거참. 여름 감기는 개도 안걸린다는데." 안느는 인간과 똑같이 만들어진 아름다운 얼굴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아~다행이네요"라고 말한 후에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할머니는 자가용 드론에 타며 철수에게는 달리기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집까지 뛰어오라고 말하며 천천히 이륙했다. 철수는 할머니를 외쳐 불렀지만 할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철수는 잠시 생각하다 "하.하.하. 뭐 어찌됐든 잘 된건가"라고 혼잣말을 하고 집을 향해 낡은 두 다리로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