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ot Synopsis
스스로를 '시간의 미아'라 칭하는 로안 카이로스는 잿빛 하늘 아래, 사이버펑크 도시의 녹슨 고철 더미 위에서 눈을 뜬다. 이번 생은 미래 도시의 해결사, 그의 몸에는 기계 의수와 함께 낯선 기억들이 파편처럼 박혀 있었다. 죽음을 맞이할 때마다 15세기 기사로, 미지의 외계 생명체로, 또 다른 누군가로 깨어나는 끝없는 윤회. 그에게 삶이란 찰나의 경험이고, 죽음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익숙한 관문에 불과했다. 하지만 수백 년에 걸쳐 쌓인 지식과 전투 기술, 그리고 지독한 고독감은 그의 영혼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는 이 모든 혼돈의 근원, 모든 시간과 차원을 하나의 '무(無)'로 되돌리려는 '크로노스 널'의 존재를 감지하고 있었다. 자신의 시대를 되찾고 이 지긋지긋한 저주를 끊어내기 위해, 로안은 다시 한번 전장에 설 준비를 하며 공허한 눈으로 뒤섞인 시공간의 풍경을 응시했다.
로안의 여정은 '기록자 길드' 소속의 차원 고고학자, 아나스타샤 볼코바와 만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아나스타샤는 붕괴된 시대의 유물을 발굴하던 중, 서로 다른 시대의 기술과 지식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로안의 존재를 발견하고 경악한다. 그녀는 로안을 단순한 초능력자가 아닌, 잃어버린 모든 시대를 증언하는 '살아있는 역사서'로 간주하며 그의 여정에 동행하기를 자처한다. 냉소적이고 이성적인 아나스타샤는 로안의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판단에 제동을 걸어주는 존재가 된다. 그녀는 로안의 단편적인 기억과 경험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분석하여, 크로노스 널이 시공간의 균열을 일으키는 '소멸의 핵'들의 위치를 추적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로안은 처음에는 그녀를 귀찮아하지만, 잊고 있던 자신의 과거 조각들을 맞춰주는 그녀에게 점차 의지하게 되며, 두 사람 사이에는 단순한 동료애를 넘어선 깊은 유대감이 싹트기 시작한다.
로안과 아나스타샤는 크로노스 널이 설치한 '소멸의 핵'을 파괴하기 위해 시공간의 균열을 넘나드는 위험한 여정을 계속한다. 그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기사단과 함께 그리핀을 사냥하고, 근미래의 반군 세력과 연합하여 나노 병기에 맞서 싸우며, 외계 차원의 기이한 생명체들과 조우한다. 이 과정에서 로안은 수없이 죽고 부활하며, 자신의 능력을 더욱 정교하게 제어하는 법을 터득한다. 그는 단순히 과거의 지식을 사용하는 것을 넘어, 각 시대와 종족의 몸에 깃든 고유한 능력을 일시적으로 발현시키는 경지에 이른다. 하지만 부활을 거듭할수록 로안의 정신은 점점 더 많은 존재들의 기억과 감정에 잠식당하며, '로안 카이로스'라는 본래의 정체성은 희미해져만 간다. 그는 때때로 자신이 누구인지, 왜 싸우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리는 극심한 혼란 속에서, 아나스타샤의 존재만이 유일한 등대가 되어주었다.
마침내 마지막 '소멸의 핵'이 위치한 시공간의 근원, '존재의 지평선'에 도달한 로안과 아나스타샤는 그곳에서 크로노스 널과 대면한다. 크로노스 널은 자신이 본래 최초의 우주에서 탄생한 '시간의 관측자'였으며, 무한히 반복되는 우주의 생성과 소멸 속에서 모든 존재가 겪는 고통과 모순을 끝내기 위해 '위대한 침묵'을 집행하는 것이라 밝힌다. 그는 로안이야말로 자신과 가장 닮은 존재라 말하며, 끝없는 윤회의 고통을 끝내고 자신과 함께 모든 것을 무로 되돌리자고 회유한다. 그의 논리는 너무나도 설득력이 있었고, 수백 년간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며 지쳐있던 로안의 마음을 강하게 흔든다. 바로 그 순간, 로안은 아나스타샤가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던, 혼돈 속에서도 싹튼 작은 희망과 사랑, 그리고 잊혔던 역사들의 가치를 떠올리며 크로노스 널의 제안을 거부한다.
크로노스 널과의 최후의 결전은 물리적인 충돌을 넘어선, 존재의 가치에 대한 철학적인 싸움이었다. 크로노스 널이 시간을 지우고 공간을 붕괴시키자, 로안은 자신이 경험했던 모든 시대의 힘을 하나로 응축시켜 맞선다. 그는 르네상스 기사의 검술에 사이버펑크 용병의 사격술을 더하고, 외계 생명체의 정신 감응 능력으로 크로노스 널의 의지에 균열을 일으킨다. 하지만 '소멸' 그 자체인 크로노스 널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승패가 갈리지 않는 영겁의 싸움 속에서, 로안은 이 모든 것을 끝낼 유일한 방법을 깨닫는다. 그는 아나스타샤에게 자신이 복원한 모든 시대의 기록을 넘겨주고, 그녀를 안전한 차원으로 밀어낸 뒤, 자신의 존재 자체를 제물로 삼아 크로노스 널을 봉인하기로 결심한다.
로안은 자신의 끝없는 부활 능력을 역으로 이용하여, 자신의 영혼을 크로노스 널과 영원히 얽어매는 '시간의 감옥'을 생성한다. 이로써 그는 크로노스 널과 함께 모든 시간선에서 격리되어, 무한한 시간 속에서 서로를 견제하며 영원히 싸우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의 희생으로 시공간의 균열은 서서히 닫히기 시작하고, 뒤섞였던 차원들은 제자리를 찾아 안정된다. 홀로 남겨진 아나스타샤는 로안이 남긴 방대한 기록과 지식을 바탕으로 '기록자 길드'를 재건하고, 붕괴된 세계의 복원을 이끈다. 그녀는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이제는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의 미아' 로안 카이로스를 떠올리며, 그가 지켜낸 수많은 존재들의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바친다. 세상은 구원받았지만, 그 구원을 이룩한 영웅은 모두에게 잊힌 채 영원한 고독 속에서 자신의 싸움을 계속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