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노을 아래, 손을 잡다
lovely soogi
11월의 마지막 금요일,
학교는 졸업 준비로 바빴다.
교실 벽에는 아이들의 사진과 장래희망이 붙었고,
복도엔 '고마웠어요', '사랑해요' 같은 짧은 쪽지가 오갔다.
그날 도서부실,
나예는 책상 앞에 앉아 윤호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말라가는 라일락 한 송이와
새 노트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조용히 문이 열리고 윤호가 들어왔다.
그는 한 손에 작은 봉투를 들고 있었다.
“이거, 너한테 주려고 만든 거야.”
나예는 놀라며 봉투를 받았다.
작은 봉투 안에는 손글씨로 가득 찬,
작은 시집이 들어 있었다.
표지엔 조용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비 오는 날의 라일락》
— 너를 처음 기억한 계절부터
나예는 한 장, 한 장 넘겼다.
그 안에는 익숙한 순간들 —
처음 우산을 나눴던 날,
처음 손을 잡았던 날,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했던 날들이
짧은 시로 담겨 있었다.
“나예야.”
윤호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제는 어색하지 않게, 망설임도 없이.
“우리가 앞으로 서로를 자주 못 보게 되더라도,
이 계절은 영원히 너랑 나 사이에 있었으면 좋겠어.”
나예는 눈을 맞추며 말했다.
“우리, 진짜 많이 컸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게 됐고,
가끔 말하지 않아도 되는 걸 말해주는 사람이 됐고…”
잠시 후, 그녀가 조용히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너랑 함께한 이 시간은,
아마 내가 평생 가장 자주 꺼내 볼 기억일 거야.”
하교길, 노을이 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걸었다.
은행잎이 발끝에 사각사각 밟히고,
서늘한 바람 사이로
두 사람의 그림자는 조용히 포개졌다.
신호등이 바뀌려 할 때, 윤호가 멈춰섰다.
“나예야.”
“응?”
“…정말 많이,
정말 오래—
널 좋아했어.”
잠깐의 침묵.
나예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거 알아?
지금 너 말투는 ‘끝’ 같았어.”
윤호가 놀라서 고개를 들자,
그녀는 웃으며 덧붙였다.
“근데… 난 이게 시작 같아.”
그리고, 노을 아래에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서로를 꼭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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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의 라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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