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주 (1)
hodram
회의실을 나서는 순간, 복도의 공기가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두루마리를 품 안에 넣었지만, 그 무게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현우의 초상화가 그려진 종이가 불에 타듯 뜨거웠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과거의 기억이 물밀듯 밀려왔다. 열다섯. 나도 그 나이에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 그때의 표적은 무림맹을 배신하려 했던 젊은 무사였다. 그의 눈에 서린 공포와 절망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버지."
귓가에 현우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아침마다 훈련장으로 향하기 전, 그 아이가 내게 건네던 미소가 떠올랐다.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 눈빛. 그 눈빛이 언제부터 무림맹의 주목을 받게 된 걸까.
지하 복도를 걸으며 손가락으로 차가운 벽을 더듬었다. 이끼 낀 돌 사이로 스며드는 물기가 내 손끝을 적셨다. 마치 피처럼 차갑고 끈적였다.
"윤검휘."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장로 중 한 명이었다. 그의 발자국 소리가 복도를 타고 울렸다.
"임무에 대해 망설임이 있는 것 같아 보이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 숨겨진 날카로움을 놓치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돌아섰다.
"망설임이라..."
내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횃불 빛에 비친 장로의 얼굴은 그림자에 반쯤 가려져 있었다.
"현우는 특별한 아이야.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네."
장로의 말에 담긴 의미를 읽으려 애썼다. 그의 눈빛은 깊은 호수처럼 평온해 보였지만, 그 밑바닥에는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었다.
"특별하다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그 아이의 재능은... 통제되어야 해."
통제. 그 단어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도 한때는 그렇게 통제되었다. 감정도, 생각도, 모든 것이 무림맹의 뜻대로 움직이도록.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
장로가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경고가 담겨 있었다.
"일주일... 충분한 시간입니다."
내 대답은 기계적이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이미 다른 계획이 그려지고 있었다. 현우를 데리고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어디로? 무림맹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과연 있기는 할까.
장로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돌아서서 걸어가는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그 발걸음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횃불이 흔들리며 내 그림자를 벽에 드리웠다. 그림자는 점점 길어져 마치 괴물처럼 보였다. 어쩌면 나는 이미 괴물이 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내 아들만큼은... 이 어둠에서 지켜내고 싶었다.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긴장이 감돌았다.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이 시간에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버지의 임무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하더군."
현우의 목소리였다. 그는 다른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윤검휘는 무림맹의 가장 신뢰받는 암살자지."
대화 상대는 장무기였다. 무림맹의 고위 간부 중 한 명으로, 현우의 스승이기도 했다. 그들의 발걸음이 점점 가까워졌다.
"언젠가는 저도 아버지처럼..."
현우의 말에 내 심장이 조여들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순수한 동경이 묻어있었다. 아들은 자신이 어떤 운명 앞에 서 있는지도 모른 채, 이 길을 동경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벽에 드리워졌다. 나는 더욱 깊숙이 몸을 숨겼다. 지금 현우를 마주하면, 내 눈빛이 모든 것을 드러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진정한 암살자가 되기 위해서는..." 장무기의 말이 이어졌다. "모든 감정을 버려야 하네. 가족에 대한 애착도."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만이 차갑게 울렸다. 내 손이 저절로 주먹을 쥐었다. 품 안의 두루마리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숨을 참고 있었던 것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현우의 마지막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결연함이, 마치 열다섯 살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복도를 따라 걸으며 손끝으로 벽을 더듬었다. 차가운 돌 사이로 스며드는 물기가 이제는 피처럼 느껴졌다. 무림맹의 모든 것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현우마저 그 피에 물들게 할 수는 없었다.
지하 복도 끝에 도달했을 때, 희미한 달빛이 작은 창을 통해 스며들고 있었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품 안의 두루마리를 꺼내 달빛 아래 펼쳤다. 현우의 초상화가 달빛에 비쳐 더욱 선명해 보였다.
"용서해라."
나직한 목소리가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두루마리를 찢으려는 순간,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서둘러 두루마리를 품 안에 넣었다. 이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횃불 하나가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불빛 속에서 장로의 그림자가 보였다. 나는 천천히 손을 검 쪽으로 가져갔다. 이제 돌아갈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서장

도주 (2)
사랑한다 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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