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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6

5화_《태엽은 거꾸로 감긴다》

소럴로소

아카데미아 학원. 찬란한 대리석 복도 아래로 깊숙이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들의 시선에서 비켜난 장소가 있다.

삐걱거리는 철문이 반쯤 열린 채로, 묵직한 공기 속에 가만히 숨 쉬는 공간—

그곳은 ‘기록 보관 하층실’, 혹은 비공식적으로 ‘Archival Sub-Basement’라 불린다.

천장에 내려앉은 먼지는 조용히 부유하고, 바닥에는 오래전 밀려난 유리관의 흔적이 점처럼 찍혀 있다.

여긴 단순한 자료실이 아니다.

학원의 가장 깊고 어두운 지식이, 권력의 기류가, 말 없이 교차하는 심층부다.

나는 오늘도 말없이 도면을 펼쳤다.

정갈하게 정리된 금속 열쇠, ‘긴급’이라 적힌 봉투,

불법 장비가 든 작은 금고.

그 한켠—검은색 USB 하나가 내 손끝에 닿았다.

평범한 외형.

그러나 그 안에는 이곳 전체를 흔들 수 있는, 너무도 결정적인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문이 천천히 밀리며 소리를 냈다.

제복의 곡선은 완벽히 다려져 있었고, 짧게 자른 은발은 빛 없이 반짝였다.

서늘한 시선이 각진 안경 너머로 나를 관통한다.

그는 부교장 파브르. 조용하지만, 절대적인 힘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발끝이 바닥을 밟을 때마다, 천천히 먼지가 일어났다. 말보다 먼저, 무게가 먼저 들어왔다.

“헬레네 양.”

낮고 단정한 목소리가 공간을 가른다.

“내 시간이 많지 않네. 어젯밤, '블랙 인덱스'가 사라졌다는 건 알고 있겠지.”

심장이, 아주 짧게 멈췄다. 손끝이 떨렸다. 그 USB 옆, 비워진 금고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라진 시각은 대략 2시 13분입니다.”

내 목소리는 작고 단단했다.

“경보는 울렸지만, 메인 서버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습니다. 내부자의 개입, 혹은 익명화 프로토콜을 사용한 흔적이 약간….. 있습니다.”

파브르의 표정은 미세하게 움직였다. 미간이 좁혀지고, 한 손이 팔짱 위로 얹힌다.

“변명은 필요 없네.”
나의 말은 칼처럼 잘렸다.

“그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게. 이젠 상층부에서도 언급이 시작됐네. 정보부의 명예가 걸려 있지.”

명예.

그 말의 진짜 무게를 나는 안다. 이 세계에서 ‘명예’란 진실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필요에 따라 지우는 권리였다.

“블랙 인덱스엔 이번 해의 기밀뿐 아니라, 과거 '시즌'들의 민감한 정보도 담겨 있습니다. 외부로 유출된다면—”

그는 내 말을 잘랐다.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네. 책임은 묻지 않겠네. 하지만… 반드시 모든 흔적을 찾아야 하네.”

그의 눈동자.

단순한 명령을 전하는 눈이 아니다. 사람을 꿰뚫고 조각내는 냉정함, 그 아래 감춰진 오래된 피로가 잠깐 비친다.

“경로는 추적 중입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잇고, 모니터 옆 서랍을 열었다.

“조금 전, 오래된 통신 채널을 통해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습니다.”

작은 창이 손바닥 위에 떠오른다. 흑백으로 점멸하는 암호화 신호.

그 구조는 잊을 수 없었다. 10년 전, ‘팬텀 세미스터 사건’ 때 쓰였던 것.

심장이, 뚝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시퀀스, 그때와 같습니다.”

내 말에 공간이 잠깐 정지했다.

파브르는 말이 없다. 팔짱을 풀었다가 천천히 손을 내렸다.

복도 끝, 희미하게 깔린 조명이 그의 그림자를 길게 늘인다.

“누가 보낸 거지?”

그의 목소리는 낮고, 드물게 조심스러웠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누구라고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것은 단순한 도난 사건이 아니다.

누군가는 지금, 이 학원의 ‘경계선’ 너머에서 새로운 게임을 시작했다.

그 순간, 문틈으로 들어온 바람에 책장이 흔들렸다. 머릿속엔 얽히고 설킨 이름과 사건들이 맴돌았다.

내 역할은 단순한 기록 관리자가 아니다.

이제는, 이 어둠 속 게임판을 뒤엎을 차례다.

나는 낡은 금속 상자를 열고, 오래된 전용 기기를 꺼냈다.

지금부터 나는 관찰자가 아니다.

조용히, 그러나 결정적으로 판을 흔드는 플레이어다.

상자 뚜껑 안쪽, 희미하게 각인된 숫자 키패드.

내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그 위에 멈췄다.

잠시 망설였지만, 곧 익숙한 순서대로 숫자를 눌렀다.

잊은 줄 알았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수십 번은 반복했던 조합이었다.

철커덕.

무거운 뚜껑이 열렸다.

안에서는 오래된 기계 특유의 냄새가 흘러나왔다—먼지, 오래된 금속유, 그리고 익숙한 한 가지.

눈앞에 놓인 검정과 은색의 작은 장치.

휴대용 암호 해독기.

공식 기록상으로는 이미 폐기된 물건.

하지만 난 알았다. 이것은 과거 ‘유령 학기(Phantom Semester)’ 사건 때 사용되던 장비였다.

해독기를 손에 들자, 작은 LED 화면이 약하게 깜빡였다.

이 구형 장비는 자동 연결이 안 된다.

직접 암호를 입력해야만 작동한다.

나는 장치 앞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그 순간—복도 저쪽에서 탁, 탁 하는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지나가는 소리.

관리 인력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누군가일 수도.

지금은 집중해야 한다.

여기선 망설이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나는 조용히 암호 입력을 시작했다.

이 방은 외부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

모든 데이터는 오직 수동으로만 전송된다.

무언가 잘못되면 기록은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첫 번째 신호음.

두 번째.

그리고 갑자기, 화면에 일그러진 전자 신호가 나타났다.

색과 형태가 이상하게 왜곡되어 있었다.

‘Black Index’를 추적하려면,

이 신호가 어디서 왔는지 알아내야 한다.

누가, 어떻게 이 시스템의 규칙을 바꾸려는지 밝혀야 했다.

그때, 해독기 화면에 숫자열과 함께 한 줄의 문장이 떴다.

“태엽은 거꾸로 감긴다.”

숨이 멎는 듯한 순간.

이 문장은 평범하지 않았다.

오래전 아카데미아 내부의 비밀 동아리,

‘에니그마 소사이어티(Enigma Society)’에서 사용했던 암호 문장.

공식 기록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소문으로만 전해져 온 조직이었다.

내 손에 들린 USB가 살짝 미끄러졌다.

무언가 중요한 지점에 다다랐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복도 끝에서 또다시 발소리가 들렸다.

익숙하지만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느낌.

낯선 존재의 기척.

나는 가볍게 숨을 고르며 상자 안을 다시 살폈다.

그 안엔 작은 열쇠 패드 하나가 남아 있었다.

이제 선택지는 없다.

이미 이 길을 선택했다.

그때 문득—파브르 부교장의 말이 떠올랐다.

“실수란 없다네.”

해독기에서 다시 낮은 신호음이 울렸다.

내 손목의 시계 초침이 그 소리와 함께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억처럼, 조심스럽게.

그리고—

철컥.

복도 쪽 문손잡이가 돌아갔다.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좁은 지하실에 울렸다.

나는 숨을 멈췄다.

문틈 아래, 희미하게 조명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 다음 순간—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있는 거 알고 있네, 헬레네. 나와 대화할 시간이 필요하네.”

정확하게 불리는 내 이름.

하지만 이 목소리는 처음 듣는다.

나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키패드를 쥔 손끝만 조용히 떨릴 뿐.

그리고 복도 저편, 또 하나의 암호 신호음이 짧게 울렸다.

기묘하고 불안한 소리.

이제 패턴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천천히 숫자를 세며, 앞으로 벌어질 대화를 가늠했다.
문 너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사이사이에 묘한 압박감이 있었다.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 침묵—그게 내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밖으로 나와주게. 괜한 저항은 의미 없네. 이 구역도 완전히 안전하진 않지.”

문손잡이가 천천히, 조용히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장갑 낀 손이 아주 미세한 압력으로 그것을 누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내 시선은 자동으로 열린 상자 안으로 향했다.


손에 들고 있는 열쇠 패드, 그리고 바닥에 반사된 희미한 조명.
모든 것이 퍼즐처럼 서로 얽혀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단편적인 정보들이 조용히 연결되기 시작했다.


최근 열람 기록, 출입 로그, 암호 해독기에서 튀어나온 수상한 문장—


“태엽은 거꾸로 감긴다.”

에니그마 소사이어티.
기록에 남지 않는, 그림자 같은 집단.


그들의 방식은 항상 같았다. 증거는 사라지고, 존재는 부정된다.

나는 조용히 손에 쥔 열쇠 패드를 주머니에 넣었다.


최대한 부드럽게, 눈치채지 않도록.
그리고 문 쪽을 바라봤다.

한 발짝, 두 발짝.
문 밖 인물도 내 움직임에 맞춰 긴장감을 조여오고 있었다.

그때 복도 끝에서 짧은 전자음이 다시 울렸다.
짧고 빠른 리듬.


비상 통신? 아니면 누군가가 설치한 추적기?

나는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었다.


이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건 두려움이 아니라 판단의 착오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인물—정체는 모르지만, 분명히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내 정보가 새어나갔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부교장은 자리를 비운 것 같군.”

상대방은 말을 끊지 않았다.
하나하나, 마치 내 반응을 분석하려는 듯한 어조였다.

나는 여전히 말하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 끝으로 열쇠 패드의 금속 표면을 천천히 두드렸다.


머릿속 깊은 곳에 각인된 또 하나의 암호를 떠올리며—우회 경로를 생각한다.

공기 중에 희미하게 전자의 잔향이 감돌았다.


뭔가, 곧 무너질 듯한 감각.

그리고 복도에서 발소리가 멈췄다.

문틈 아래로, 광이 도는 구두의 끝이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테일러드 슈즈.
아직 그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몸을 낮춰 상자 안쪽을 더듬었다.


헝겊 아래 숨겨져 있던 작은 쪽지.
비상 상황을 위해 오래전에 준비해 둔 마지막 단서였다.

거기엔 단 한 줄.


수년 전, 나 스스로 남긴 문장.

<태엽이 거꾸로 감기는 순간, 마지막 열쇠는 북쪽 틈에.>

숨이 멎는 듯한 짧은 정적 속에서, 문밖 인물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이전보다 낮고, 한층 진지했다.

“헬레네. 모든 걸 바꿀 수 있어.
내가 원하는 건—단 하나뿐일세.”

그 말 속에 담긴 의미를 다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그건 단순한 제안이 아니었다.


협박도, 명령도 아닌—거래의 신호였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했다.


모든 감각이 곤두선 상태.
어떤 실수도,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

그리고—
문손잡이가 확실히 돌아갔다.
금속이 딸깍, 걸리는 소리가 귓속에 뚜렷하게 울렸다.

더는 물러설 공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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