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Episode 4

3화_신입생 Unknown

소럴로소

오늘은

아카데미아 학원에서의 첫날이었다.

어느 지도에도 표기되어 있지 않은 무인도의 거대한 고딕 양식의 캠퍼스.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리고 귓가를 스치는 낮은 속삭임들.

모든 게 낯설고, 눈부시고, 어딘가 이상했다.

아침 햇살이 테이블 위 태블릿을 스치듯 비추고 있었다.

꺼진 화면 위로 얇은 빛줄기가 미끄러지듯 지나갔고, 그 속에 내 눈이 비쳤다.

말없이,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눈.

멀리서 학생 몇 명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내용을 듣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그냥 확인하고 싶었다.

독일어로 누군가 외쳤다.

„Dem grünen Löwen die weiße Krone!“
(“초록 사자에게 흰 왕관을!”)

그러자 어떤 학생이 그 학생에게 속삭였다.

“Die schwarze Eule trägt silbern Federn heute.”

("그 검은 부엉이는 오늘 은빛 깃털을 달고 있다.”)

초록 사자? 흰 왕관?

아마도 그 암호는 이럴 것이다.

처음 내가 마주한 문장은 이렇게 시작했다.
“Dem grünen Löwen die weiße Krone.”
(“초록 사자에게 흰 왕관을.”)


처음엔 단순한 문장처럼 보였지만, 뭔가 심상치 않았다.
마치 단어 하나하나가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는 암호의 실마리처럼 느껴졌다.

나는 문장을 이루는 단어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각 단어의 길이가 명확하게 다르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Dem’은 딱 3글자, ‘grünen’은 6글자, ‘Löwen’ 5글자, ‘die’ 3글자, ‘weiße’ 5글자, ‘Krone’ 5글자였다.


총 27글자.
이 숫자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내가 추측한 첫 번째 가설은 이랬다.
암호문 속 단어들의 글자 수가 평문의 글자 수 구획을 정한다는 것.


즉, 이 문장을 ‘틀’로 삼아 평문을 숨겼다는 의미였다.

나는 평문의 문자를 암호문의 단어 길이에 맞춰 분할했다.


평문은 이렇게 나뉘었다.
‘THE’ / ‘SECRET’ / ‘CODE’ / ‘IS’ / ‘HIDDEN’ / ‘WITHIN’


각 구간의 길이가 정확히 암호문 단어 길이와 일치했다.
이제 암호문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일종의 ‘키’였다.

더 깊은 분석이 필요했다.
왜 ‘초록 사자에게 흰 왕관을’일까?
이 문장은 상징적이다.


초록 사자는 권위와 생명력, 흰 왕관은 순수함과 지혜를 상징한다.
암호는 단순한 문자 배열이 아니라, 상징과 의미가 뒤섞인 다층적 퍼즐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문장은,
“Die schwarze Eule trägt silbern Federn heute.”
("검은 부엉이는 오늘 은빛 깃털을 달고 있다.")


이 문장 역시 33글자로 평문의 길이를 맞췄다.
나는 같은 방식을 적용했다.


단어별 글자 수에 맞게 평문을 나누고, 그것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지 살폈다.

결과는 분명했다.


‘UNDERSTOOD YOUR MESSAGE LOUD AND CLEAR’
(‘너의 메시지를 분명히 이해했다.’)

이 두 암호문과 평문이 이루는 대화는,
단순한 비밀 전달 그 이상이었다.


그 안에는 언어학적 미학, 논리적 정확성, 그리고 문학적 상징이 공존했다.

이 구조를 파헤치면서 나는 배웠다.


진정한 암호란, 숫자와 문자의 단순한 치환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그것은 의미의 층을 쌓고,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며, 감성까지 울려야 한다는 것을.

‘Dem grünen Löwen die weiße Krone.’
그 속에 숨겨진 평문을 찾아냈을 때, 나는 암호라는 것은 단지 ‘감춰진 글’이 아니라,
‘보여지지 않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듣기에 동화 같았지만, 그 말투는 예리하고 냉정했다.

단어 하나하나에 숨은 의미가 담겨 있었고, 그걸 놓치면 이 세계에서 바보가 되는 듯한 분위기였다.

나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사람들을 조용히 관찰했다.

한쪽 테이블엔 ‘마틸다’라는 이름표를 단 학생이 앉아 있었다.

짧고 단정한 검은 머리, 감정 없는 표정.

그녀는 주위에서 쏟아지는 말과 수식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끊임없이 펜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 손끝이... 참 인상적이었다.

아름답다기보단, 정확했다.

문득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왼손엔 체스 말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밤사이 누군가 사물함에 두고 간 메모와 함께.

"여기선 체스판 위 말처럼 신중해야 해.

네가 킹이든, 폰이든. 게임은 이미 시작됐으니까."

"게임이라..."

그 단어가 입 안에서 천천히 맴돌았다.

나는 웃지 않았다.

웃기엔, 아직 이 상황이 어울리지 않았다.

고개를 들자 복도 창문 틈 너머로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문뜩 떠올랐다.

여느 때와 같이 길거리에서 배회하며 살아가던 날들의 기억이.

축축하게 젖은 골목, 쓰레기 더미, 길게 번지는 사이렌 소리.

그날은, 뭔가 달랐다.

잔뜩 젖은 신문지 위로 붉은 게— 물이 아니라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발끝이 미끄러졌고, 무엇인가 질척하게 닿았다.

손이 떨렸다.

그리고, 내 손에 쥐어져 있던 날카로운 무언가가 떨어졌다.

피가 묻은 칼날이 차갑게 바닥에 ‘찰칵’ 소리를 냈다.

피는 계속 번지고 있었고,
그 중심엔 사람이 누워 있었다.


눈을 뜬 채로.
나를 바라보는 것도 같고,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비어 있었다.

숨이 턱 막혔다.


뒤를 돌아 도망치려던 순간—
어둠 너머, 골목 가장자리.


거기 누군가가 서 있었다.

검은 비옷, 모자에 가려진 얼굴.


그 사람은 한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빛이 반사되어 형체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가 나를 보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잠시, 정적.
비 소리만 들렸다.


그는 천천히 오른손을 들었다.
그리고… 입을 열지도 않고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날 이후, 난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내가 거기 있었다는 건, 아무 기록에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알고 있었다.


분명히.

그리고 며칠 뒤, 그 사람이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도움이 필요한가?"

"다시 한번 물어보도록 하겠다."

"도움이 필요한가?"

그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차가운 빗물처럼 뼛속 깊이 스며들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 그는 돌아섰고—
나는 그 뒤를 따라 걸었다.


말없이. 망설임도 없이.

그게 나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이 모든 건, 단순한 학원이 아니라는 걸.
여기에도, 그때의 어둠과 비슷한 냄새가 스며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지금,
그 체스판 위에서 다시 말을 꺼낼 차례가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내가 들어서자 몇몇 학생들이 나를 힐끗 쳐다봤다.

길게 바라보진 않았지만, 눈빛 속엔 질문이 가득했다.

‘쟤는 뭐지?’

‘어디서 온 거야?’

‘왜 지금 전학을 온 걸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말할 수 없었다.

서류상 내 국적은 ‘홍콩’.

하지만 나는 일본어도, 불어도, 체코어도 말할 수 있다.

원한다면 힌디어도, 심지어 사라진 언어로도.

그리고… 나만 이 사실을 아는 건 아니란 것도 알고 있다.

교실 문을 열었을 때,

몇몇은 순간적으로 멈췄다.

서류상 본명은 '이레'.

그리고....이곳에서의 첫날.

그리고 내가 품은 무언가가 이 판에 끼어드는 순간.

나는 조용하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 누구보다 조용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교실 안은 기묘하게 정적이었다.

바닥엔 빛이 오목하게 고였고, 모든 움직임이 예민하게 교차하는 공간.

의자와 책상 사이를 스치는 작은 소리조차, 여운을 남기며 퍼졌다.

마틸다의 시선이 잠깐 내 쪽으로 스치더니,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자신의 노트로 향했다.

하지만 그녀의 손끝이 딱 한 박자 늦게 멈춘 걸, 나는 알아챘다.

펜촉을 들어 올린 채 일정하게 흔들렸고, 팔목 근처에 연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내 자리를 찾아 앉자,

내 옆에 앉은 한 남학생이 조용히 의자를 끌었다.

그는 명확하게 소개를 하지 않았다. 단지, 슬쩍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여기선 질문이 많은 사람보다, 답을 늦게 내리는 사람이 오래 남아. 적어도… 지금까진 그랬지.”

나는 그의 얼굴을 천천히 살폈다.

서늘한 청회색 눈동자, 차분한 목소리,

어쩌면 루이 드랑블루, 그 학생회장일지도 모른다.

학원 곳곳에서 회자되던 그 이름.

아니면, 그저 정보를 흘리는 방관자일 수도 있었다.

교탁 위 스크린이 빠르게 켜졌고, 데이터 흐름이 번쩍였다.

전자 출석부 시스템의 소리 없는 초기화.

누군가가 실시간으로 접속해 정보를 다루고 있다는 신호음이, 아주 짧게, 아주 낮게, 들렸다.

나는 태블릿을 펼쳤다. 로그인 창, 출석 리스트, 그리고 아래쪽에 나에게 도착한 짧은 단문의 메시지.

"<패턴 아래를 바라볼 것.>"

언제, 누가 보낸 문장인지 분명치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 누군가의 눈길이 내 손끝을 따라 흐른다고 느꼈다.

아직, 본격적인 첫 시간이 시작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게임은 조용히 준비되고 있었다.

교실 뒤편 창 너머로, 어렴풋하게 그림자가 움직였다.

누군가의 실루엣이 빛에 잠겨 사라졌다.

나는 내 왼손에 쥐여진 킹을 주머니에 넣었다.

잠시, 짧게 숨을 고르며―누구보다 조용하게, 그러나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결의로―주변을 둘러봤다.

첫 움직임이 시작되는 순간, 어디서 무엇이 흔들릴지 모른다.

지금, 이 공간 전체가

숨을 죽이고 다음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석부의 데이터가 한 번 더 깜빡였다.

섬세한 노이즈와 함께, 로그인 창 위에 숫자들이 흐르듯 바뀌는 순간.

내 아이디 옆에 ‘pending’이라는 알림이 초록색으로 떠올랐다.

타이밍이 어설펐다. 자동화된 알고리즘이라면, 훨씬 더 매끄러웠을 테다.

누군가―사람의 손이 삽입된, 조정된 흔적.

나는 화면 위에 손가락을 얹고, 일부러 지문이 남도록 가만히 눌렀다.

좌석을 따라, 파동처럼 시선들이 한 번 더 움직였다.

마틸다가 이번엔 아예 작게 숨을 내쉬며, 내 쪽을 힐끗 올려다봤다.

늘 일정한 그녀의 표정, 하지만 눈이 살짝 흔들렸다.

방금 내 태블릿에서 뭔가 ‘신호’가 새어 나간 걸 눈치챈 걸까.

아니면, 그녀 역시 같은 메시지를 “<패턴 아래를 바라볼 것>” 을 받았던 걸까.

스크린에 표시된 출석 학생 수가 미묘하게 늘었다 줄었다.

분명 교실 문은 닫혀 있고, 아무도 더 들어오지 않았다.

누구 하나, 자세를 고쳐 앉으며 주의를 흩트리려 애쓴다.

저마다의 일상인 듯 행동하며, 그러나 모두가 뭔가를 감추는 얼굴이다.

창 너머로 흰 구름이 천천히 지나갔다.

빛이 살짝 달라지며, 책상 위의 마틸다의 손 그림자가 대각선으로 미묘하게 움직였다.

나는 그 그림자를 바라보며 체스의 퀸 움직임을 머릿속에 그렸다.

대각선, 곧장, 아주 멀리까지 나아갈 수 있지만―

한 번이라도 상대의 계산을 놓치면, 간단히 체스판 밖으로 끌려나게 된다.

저 멀리, 교실 문 뒤에서 또 한 번 움직임.

미세한 노크음이 울렸고,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앞쪽으로 몰렸다.

"출석을 부르도록 하지."

선생, 혹은 또 다른 관찰자.

공기가 잠시 비틀리고, 의자와 책상 사이 틈에서

조금 전에 느꼈던 불안이 다시 살아났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된 건 없었다.

하지만 이제 곧, 누군가 ―

첫 질문을 던질 차례였다.

2화_ 정의되지 않는 것
Previous episode

2화_ 정의되지 않는 것

Up next
4화_체스, 그 이상
View Next Episode

4화_체스, 그 이상

아카데미아의 검은 체스판(1)

+ 50

아카데미아의 검은 체스판's Story Chat

Want to chat with 시라이시 아키토?Chat with this story's characters — an AI conversation in their own voice.
message icon

More episodes

View More
아카데미아의 검은 체스판(1)top serial

아카데미아의 검은 체스판(1)

소럴로소
Serial Story Detail - YLAB 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