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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4

4 장재만 씨 추억을담다 . Jang Jaeman Capturing Memories .

세상을그리다.

화방 문이 닫히고, 물감 냄새가 희미하게 멀어질 즈음, 장재만은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 손목에 얹힌 앞치마를 무심히 털었다. 나탈리아와 학생들이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아직 다 감추지 못한 수업 자료와 노트를 품에 껴안고 있었다. 차분히 시작됐던 화방 안의 대화는 어느새 밖으로 흘러나가 그들 모두가 작은 도시 속으로 걸어들어가려는 순간을 만들었다.

“이쪽으로 가자.” 화방 앞 포장도로에 덤덤히 멈춰 서며 장재만이 말했다. 그의 손이 무심히 골목 한켠을 가리켰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오래된 길 뒤편, 잔잔히 쌓인 낙엽들이 아직 아무도 치우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학생들은 그의 음성에 즉각 고개를 들었고, 나탈리아는 움푹 주저앉은 길 끝을 바라보다 나지막히 물었다.

“저기... 뭐 있어요?” 서툰 한국어, 흔들리는 억양 속에서도 그녀의 말에 묘한 기대가 배어 있었다. 장재만은 잠시 입가를 굳게 닫았다가, “낙엽집회소라고들 불렀던 곳이지. 불났을 때, 그 골목 끝에 사람들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그는 흩어진 기억의 파편 속에서 침묵을 찾듯 일순간 고개를 돌렸다.

나탈리아가 자신의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들고는 셔터가 울리는 소리를 남겼다. 그녀의 뒤로 다른 학생들은 노트 위에 휘갈긴 글씨를 팽팽히 눌러 담았다. 장재만은 한 채 초조함도 없이 그들이 뒤따라오는 걸 느낀 채 골목을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낙엽이 발밑에서 파삭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골목 끝으로 가기 위해 내딛는 발걸음마다 지난 시간의 흔적이 발아래 뒤섞인다. 하루 종일 사람의 손길을 잊다시피 했던 곳, 길모퉁이에는 벗겨진 페인트와 시멘트 조각, 철길 흔적들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장재만은 우연히 그의 눈에 들어온 오래된 벽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꺼냈다. “저기 불 탄 자국, 그날 물 퍼 나르며 막으려 했던 흔적이다.”

한 학생, 작은 체구의 치훈이 장재만이 가리킨 자리에 서 있던 오래된 물통을 발견하고 짚어들었다. 때 묻은 손잡이를 한참을 관찰하던 그의 얼굴에는 가만히 깊은 생각이 깃들었고, 몇 초의 침묵이 흘렀다. “이걸... 된 거긴 한 걸까요? 화재의 자취라니...” 치훈의 목소리는 처음의 호기심이 서서히 숙연함으로 떨어져 내려왔다.

그때 나탈리아는 주저함 없이 다가와 물통 너머로 자신의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 액정 너머, 그녀의 눈이 점점 긴장감과 불안감으로 섞이는 듯 빛났다. 그녀는 장재만 쪽으로 힐끗 눈길을 보내면서 다시 물었다. “당신이 그날, 여기서...” 한국어 단어는 끊기듯 이어졌지만, 그녀의 뚝심 있는 질문은 분명했다.

장재만은 발걸음을 멈췄다. 주름진 눈꼬리가 살짝 가늘어지며, 잠깐 느려진 호흡 속에서 말이 터져 나올 듯했다. 하지만 그는 채 대답하지 않고, 낙엽 끝자락을 자신의 발로 부드럽게 밀어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날 어땠다더냐, 지금은 다 지나가버린 것뿐이다”라는 답만 흘려 보냈다.

“근데…” 나탈리아가 다시 입을 열었지만, 곧 자신이 너무 무거운 질문을 던지려 한다는 느낌에 말끝을 잡고 멈추었다. 그녀는 깊은 숨을 들여 마시며 카메라를 다시 들었다. 골목 한쪽, 칠이 벗겨진 벽돌 위에 남겨진 초기 소방 마크가 묘하게 그녀의 관심을 끌었다.

“이런 게 전부 이야기죠. 우리가 모은 기억 속에,” 그녀는 마침내 조용히 말한 뒤 카메라 셔터를 툭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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